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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 이전받은 중소기업, 지구촌 의료·환경·주거 개선하고 수출도 하고

중앙일보

입력

전체 인구 3000만 명 가운데 10분의 1이 난민인 나라. 난민 세 명 중 한 명이 어린이인 나라. 장티푸스와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이 전국 곳곳에서 창궐하는 나라. 바로 1950년대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은 이런 가난과 질병을 이겨냈다. 이젠 이런 장면은 잊혀졌다. 하지만 과거의 풍경이 아직도 현실인 곳이 있다. 지구온난화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이다. 이곳에선 제대로 된 상수원 급수시설이 없어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매년 200만 명의 사람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낮잠 자는 공공기술 2만 여건, 중소기업엔 보배<중>
중기, 공공기술로 수처리 제품개발해
사업화 성공해 오염 물 마시는 개도국 지원
시장도 창출해 수출도 늘려
미래부, '지구촌 기술나눔센터'도 운영
담수 개발 기술 이전받은 '프로세이브'
잔류농약 분석기술 받은 '크로엔리서치'
공공기술 이전 통한 사업화 모델 제시

이런 물부족 국가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도구 중 하나가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스트로(생명의 빨대)'다. 스위스 베스터가드 프란센에서 만든 제품으로 바이러스, 수인성 박테리아, 기생충을 99% 제거한다. 길이 25cm의 이 빨대는 대량 구매시 개당 10달러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라이프스트로는 식수문제가 심각한 개발도상국에 유용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대표적 결과물로 꼽히고 있다.

적정기술은 저개발국의 삶의 질 향상과 빈곤퇴치 등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발한 기술을 뜻한다. 첨단기술은 아니지만 빈곤층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중간기술이라고도 불린다. 해외의 경우 기업과 공익재단뿐 아니라 대학,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적정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개발한 적정기술은 중소기업에 이전해 사업화한 뒤 저개발국에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에서 적정기술 활동은 2000년대 초반 대학, 시민단체 등에 의해 소규모로 시작됐다.
2008년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학생들이 아프리카 수단 지역에 정수장치를 지원한 '옹달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엔 정부가 과학기술 공적원조(ODA)의 일환으로 국내 공공기술을 개도국에 맞게 현지화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캄보디아 국립기술대학에 '적정과학기술센터' 1호를 설립했다. 캄보디아의 경우 국민의 70%가 중금속과 오폐수로 오염된 우물, 하천 등을 식수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2017년까지 '저비용 수처리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개발한 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해 사업화하고 베트남, 라오스 등 물 문제를 겪고 있는 메콩강 주변국에도 깨끗한 식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적정기술의 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미래부 산하에 '지구촌기술나눔센터'도 개소했다. 지구촌기술나눔센터는 국공립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 시민단체 등의 적정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개발도상국에 맞게 현지화하는 작업을 도울 예정이다. 적정기술 사업화 과정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은 중소기업들은 현재 해외 시장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프로세이브는 한국기계연구원으로부터 태양열 해수 담수 개발에 대한 특허기술을 이전받아 '태양열 복합열원 다중효용 해수담수기'를 개발했다. 이 제품이 상용화되면 오지·도서·산간 등 상수도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 태양열, 폐열 등으로 담수를 생산할 수 있다. 태양열만으로 하루 18리터의 담수를 만들 수 있다. 이 업체는 내년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 제품을 수출해 2017년 매출 1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잔류 농약 분석업체인 크로엔리서치는 8월 베트남 남부지역 작물보호제관리센터(SPCC)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현지 농약 성분 분석과 농산물 잔류농약 분석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쌀, 커피, 차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농약 잔류분석 기술이 미비해 미국, 한국 등 주요 수입국에서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돼왔다. 안전성평가연구소(KIT)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잔류 농약 분석기술을 지원받은 크로엔리서치는 베트남 현지에 농약 성분 분석 기술을 이전할 계획이다. 또 SPCC와 합작법인 형태로 베트남 최초 비임상시험 대행기관(CRO)을 설립해 현지 농약 독성평가를 함께 수행할 예정이다.

박영찬 크로엔리서치 대표는 "공공기술을 이전받아 사업화한 결과 베트남과 한국 국민의 먹거리 안전에 기여할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기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신성장동력센터 부연구위원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한국형 적정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며 ""우리 공공기술로 개발도상국의 의료, 환경, 주거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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