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인터넷 검색으로 국방계획 짜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사 이미지

박재현
논설위원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항소심 재판이 남아 있어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통영함 납품비리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뒤였다. 한때 해군의 총책임자였던 그에게 합수단 수사는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을까. 법원의 무죄 선고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할까. 합수단 주장처럼 국고 낭비에 대한 면죄부일까. 아니면 무리한 수사에 대한 경종일까.

 황 전 총장이 아닌 해군 장군들이 자리를 대신 채웠다.

 “이번에 문제가 된 통영함 사건의 경우 미래 무기 체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고….” 합수단 수사에 대한 해명성 설명이 시작됐다. 사업 추진기간이 길고, 실물이 없고, 안보환경 변화와 기술 발전 등에 따라 ROC(군의 작전요구성능)가 변경될 수 있다는 등의 ‘참고자료’도 동원됐다. 접점을 찾지 못한 대화는 건조해지고 있었다. 식당에 쭈그리고 앉아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복기(復棋)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뒷담화나 별반 다름없었다. 그의 혐의를 둘러싼 논란은 사법심사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정답이었다.

 대신 ‘초라한 리더’들을 둔 조직의 멍에가 질문의 한편으로 들어섰다.

 -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해군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장병들이 늘고 있다. 해군복을 입은 우리들을 보고 ‘저기 해적들 지나간다’고 비아냥거릴 땐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갓 부임한 젊은 장교들은 ‘해군이 과연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조직인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상부의 지시와 명령에 대한 권위가 위협받고 있다.”

 - 원죄의 성격도 있는데.

 “명백한 비리 혐의도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부풀려진 것도 많다.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군인들이 해먹은 게 1조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비리액수에 사업비까지 포함시켰다. 군대가 비리만 일삼는 집단인가. 우리는 명예를 먹고 산다.”

 - 구속된 군인들의 재판은.

 “해군의 경우 전·현직 30여 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 중 한 명이 자살했고, 28명이 구속됐다. 금품 비리로 구속된 이는 3~4명에 불과하다. 배임이나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이 많이 억울해하고 있다. 대령급 1억원을 기준으로 하급직은 7000만원, 장군급은 1억5000만원가량의 변호사 비용이 들고 있다. 연금 하나 바라보고 온 사람들의 입장에선 목숨 걸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 변호사 선임 등도 모두 개별적으로 하고 있어 무죄가 나도 가산을 탕진할 수밖에 없다.”

 - 합수단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 해군 함정은 다양한 장비를 시험해보고 장착하면서 만들어진다. 자동차 부품처럼 새로운 것을 사서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전문성에 대한 고려를 해줬으면 한다. 합수부 수사팀에 해군이 사실상 소외된 것도 섭섭하다. ‘해군이 힘이 없어 당한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합수단을 지휘하는 검찰의 생각은 어떨까. “군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관용은 없다”는 것이다. 당장 해상작전헬기 ‘와일드 캣(AW- 159)’ 도입 비리의혹과 관련해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수사의 타깃이다. 해군의 ‘한통속’을 비난하는 주장도 듣게 됐다. 개인 비리가 조직 전체에 대한 모멸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수사가 계속될 조짐이 느껴졌다.

 그럼 수사 효과는 어떨까. 방산비리에 대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의 방어체계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을까.

 “이번 수사 이후 일절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종 무기 현황과 사업자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 있습니다. 국방계획은 계속 짤 수밖에 없으니깐.”

 10월의 어느 멋진 날, 합수단과 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