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두들겨 맞는 홍콩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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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홍콩 경찰은 평소엔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거나 누군가 법을 위반하면 총알처럼 나타난다. 사소한 교통위반부터 폭력단과의 총격전까지 궂은 일은 도맡는다.

업무 위험도에선 한국 경찰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길을 물으면 직접 데려다 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경찰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신뢰가 전폭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대접도 받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다 경찰 오토바이에 추격당하는 낯선 경험을 했다. "택시 정차지역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50대쯤 돼 보이는 택시기사는 두어 번 사정을 하는 것 같더니 체념한 듯 운전면허증을 내밀었다. 경찰이 떠난 뒤 기사는 "대들면 일이 더 커져요. 벌금이 20만원은 넘는데…"라며 한숨을 쉰다.

그러나 홍콩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사정이 변하고 있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민심이 억세진 탓일까. 경찰에게 대들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더 이상 '고분고분한 시민과 권위있는 경찰'이 아니다. 홍콩 경찰의 권위가 예전만 못한 것이다.

18일엔 마약사범 단속 경찰과 교통위반 단속 경찰이 두들겨 맞았다. 지난주엔 30대 경찰이 오토바이 폭주족 10여명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다 몰매를 맞았다. 홍콩 경찰에 따르면 올 들어 5개월 동안 '경찰 공격 사건'이 2백39건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늘어난 수치다.

경찰들은 "초등학생도 대드는 세상"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젊은이의 거리인 침사초이에 근무하는 아밍 경장은 "10대 초반 소년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자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따지더라"고 내뱉듯 말했다. 경찰력이 도전받는 현상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야당에선 "둥젠화(董建華)정부가 일을 잘못하니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깔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떤 사람들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사회 분위기가 느슨해졌다"고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이유야 무엇이든 공권력을 무시하는 사회는 병들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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