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군에 간 아들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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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들놈 칫솔이 칫솔꽂이에서 웃고 있고/수저는 수저통에서 반짝이고/운동화도 신발장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알맹이만 없네요/알맹이가 빠져나가 휑한 빈 방에서/우두커니 아들놈 사진보고 묻습니다/아프냐? 나도 아프다.'

▶ 노은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군에 간 외아들 신재문씨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있다. 노씨는 아들이 군에 있을 동안, 그리고 아들에게 할말이 남아있을 때까지 인터넷에 편지를 연재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설가 노은(49)씨가 쓴 '이병엄마의 겨울 연가' 중 일부분이다. 노씨의 외아들 신재문(24)씨는 지난해 8월 입대해 공군 사병(현재 일병)으로 복무하고 있다. 재문씨는 노씨와 남편 신성철(52.교사)씨의 유일한 혈육이다.

노씨는 아들을 생전 처음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낸 뒤 '편안한 자리에 누워도 단잠을 못 잔다'는 군인 어머니의 마음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심경을 글로 담아 매일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교양월간지 '좋은 생각(www.positive.co.kr)'의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이병엄마의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늦가을 재문이가 자대 배치를 받아 이동하는 길에 진주터미널이라며 전화를 했어요. 언젠가 버스터미널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병사들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거예요."

밤새 울고난 뒤 노씨는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했다. 이 글에 '이병엄마의 겨울연가'란 제목을 붙여 공군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이 화제가 되자 잡지사 '좋은생각'이 노씨에게 연재를 제의했고, 노씨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한 편씩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띄웠다. 지금까지 90회 가까이 보낸 노씨의 편지는 회당 1000번 정도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군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주로 어머니들이에요. 많은 분이 댓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합니다."

노씨가 글 한 편을 올리면 '이병엄마'에서부터 '병장엄마' '예비엄마'까지 어머니 독자들이 올린 댓글이 10여 편씩 따라붙으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이 형성된다.

"인터넷에는 '곰신'(고무신의 줄인 말로 군인 애인을 지칭하는 속어) 모임은 많지만 어머니들의 모임은 거의 없어요. 제 코너가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의 사랑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광주 출신인 노씨는 전남여고와 건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9년 장편소설 '키 작은 코스모스'로 데뷔한 이후 2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글.사진=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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