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표정은 밝았다.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에 짙은 남색의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한 김 위원장은 25분에 걸쳐 육성 연설까지 했다. “우리 당은 미제(미국)가 원하는 어떤 형태의 전쟁도 다 상대해줄 수 있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김 위원장의 바로 왼편에는 중국 권력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오른편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자리했다.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과 최용해ㆍ김기남 노동당 비서도 주석단에 올랐으나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열병식은 이날 오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전 내내 비가 내려 오후3시(평양시간 2시30분)에 시작됐다. 군이 김일성광장에 입장한 후 김 위원장이 주석단에 등장했으며 이어 이영길 총참모장의 시작 보고로 이어져 본격 열병식 행사가 시작됐다.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연설을 할 지 여부도 관심사였다. 열병식에서 짧은 구호만 외쳤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장장 25분에 걸친 연설을 했다. 김 위원장은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노동당 창건일에서 특히 ‘인민생활 향상에 힘쓰는 애민(愛民)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에 앞서 전날인 9일 밤엔 중국의 류 위원과 회동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10일 전했다. 그간 소원했던 북ㆍ중관계가 착착 복원 단계를 밟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류 위원에게 ”중ㆍ조(북ㆍ중) 우의가 ‘대를 이어 서로 전해 내려가기’를 충심으로 바란다“는 축전을 들려 보냈다. 류 위원은 이날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북한과 함께 노력해 6자회담이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관련 당사국들의 이익과 지역안정, 세계평화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역시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 생활을 개선하기 우해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 환경이 필요하다”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과 류 위원은 회담 후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도 했다.
10일 진행된 인문군 열병 행진은 북한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300mm 신형 방사포도 첫 등장했다. 북한은 국제사회 추가 제재를 부를 수 있는데다 발사시험 실패 가능성도 있는 '장거리 로켓 리스크' 대신 열병식에서 무력 시위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총 2만여 명의 군 병력이 대규모 퍼레이드를 펼쳤고, 민간 퍼레이드에는 주민 10만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당국은 열병식과 당 창건 70주년을 대외적으로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외신기자들을 대거 초청했으며 인터넷도 비교적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허용했다. 노동당 창건일 분위기를 한껏 띄워 대외 선전용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평양 현지에서 취재 중인 외신기자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리허설을 하러 가는 한복 차림의 평양 여성들이며, 평양 시내에 눈에 띄게 늘어난 택시 기사를 인터뷰해서 기사를 송고하는 등,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취재 환경을 보장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