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노키오에게는 왜 귀가 필요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7호 14면

1944년의 피노키오 일러스트

거짓말하지 말고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는, 지극히 교훈적인 동화로 기억하고 있는 『피노키오』를 막상 어른이 되어 읽어 보니 이 세상 온갖 육아의 고통을 총망라한 교육학 지침서로 읽힌다. ‘말 안 듣는 천방지축 말썽꾸러기’의 대명사 피노키오는 어른의 눈으로 보니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세상을 향한 반항심의 집결체였다.


피노키오의 창조주 제페토의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그 고통의 일부는 제페토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피노키오의 버릇을 고쳐 주겠다며 귀를 잡아당기려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노키오에게는 귀가 없었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서둘러 만들다가 귀 만드는 것을 깜빡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말썽쟁이 소년에게는 타인의 말을 들을 ‘귀’가 없다는 것, 이 얼마나 훌륭한 은유인가! 어른이 되어도 남의 조언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귀가 발달하지 못해 평생 고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좋은 말을 들려줘도 ‘쇠귀에 경 읽기’니 말이다.


목각인형이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바로 ‘귀’를 만들어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었다. 귀가 열려 타인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늘 좋은 말만 들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피노키오를 꼬드기는 존재들은 그가 가진 아주 작은 소유물들을 노린다.


제페토는 피노키오의 교과서를 사 줄 돈이 없었기에 하나뿐인 외투를 팔아 그 돈을 피노키오에게 준다. “아들아, 부디 이 돈으로 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해다오”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눈물겨운 푼돈을 노리는 이들은 피노키오를 유혹한다. 피노키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과 맛있는 사탕을 먹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결국 더 달콤하고 더 편안한 유혹의 목소리에 따르고 만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도 옳은 것을 택할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그 귀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1936년 이탈리아 만화 ‘피노키오’

들을 수 있는 ‘귀’ 보다 중요한 건 ‘의지’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강한 의지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연마된다. 피노키오가 겪는 모든 유혹은 사실 현대사회의 어른들도 항상 겪는 것들이다. 피노키오는 “네가 가진 돈을 수백 배로 부풀려 줄게”라는 사기꾼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너를 우리 멋진 조직에 넣어 줄게”라는 집단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때로 다리가 몽땅 불타 버리는 처참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목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비로소 피노키오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제 ‘용기’라는 오른팔과 ‘의지’라는 왼팔의 도움을 받아 누구보다도 씩씩한 소년이 된 피노키오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관문은 바로 ‘이기심’이었다. 이기심은 어른들도 넘기 힘든, 아니 어른들이 더욱 뛰어넘기 힘든 마음의 장애물이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다”로부터 시작해서 “남보다 더 뛰어나고 싶다”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타인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자 치명적인 결점이다. 모든 상황에서 이기심을 내세우면 인간은 결코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사회생활을 버텨 낼 수 없다. 피노키오는 제페토와 함께 걸식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이 무시무시한 이기심의 늪을 건널 수 있게 된다. 굶주린 제페토가 우유 한 잔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피노키오는 자신이 물레방아를 직접 돌리는 노동을 감당하는 대가로 제페토에게 매일 우유 한 잔을 먹일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피노키오는 하루 종일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겨운 노동 끝에 번 돈을 아버지 제페토를 살리는 데 쓰게 된다.


자기 때문에 오랫동안 온갖 고생을 해 온 아버지를 돕는 데 자신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피노키오는 생애 최초로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아버지 몰래 사탕을 사먹는다거나 교과서 살 돈으로 서커스 구경을 가는 은밀한 쾌락과는 도저히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희열, 그것은 “나의 힘으로 소중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피노키오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가진 작은 힘들을 모아 마침내 나에게 소중한 타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잘한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더 커다란 내면의 희열이라는 것을.


‘사회적 인간’ 만드는 것은 공감 능력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을 때, 피노키오는 비로소 진짜 인간이 된다. 쾌락주의자 피노키오는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나보다 더 나를 아파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되어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피노키오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은 한 아이를 둘러싸고 ‘친밀감의 공동체’를 이룬다. 누군가 나를 진실로 걱정하고 배려하며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나를 구원할 수 있다. 피노키오는 ‘혼자 경험하는 쾌락’과 ‘함께 경험하는 쾌락’의 차이를 알게 된다. 혼자 먹는 사탕은 입에만 달지만 함께 먹는 음식은 마음에도 달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는 소박한 음식은 그 어떤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이 되니까.


맛있는 것을 혼자 먹을 때 누군가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고, 아름다운 장소를 혼자 바라볼 때 간절하게 함께할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이다. 생물학적인 인간을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공감(empathy) 능력이다.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그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지만, 그 서글픈 한계를 뛰어넘어 타인의 슬픔에 가 닿는 것. 당신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어도 당신의 모든 감정과 열망과 무의식까지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므로.


들리는 말들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뜰 때까지 피노키오는 온갖 고초를 겪는다. 피노키오의 외형을 만든 것은 목수 제페토였지만, ‘피노키오의 마음’을 만든 것은 피노키오 스스로의 투쟁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피노키오 이야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가슴이 아리다. 내가 저지른 일에 진정으로 아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나기까지, 우리는 언제까지나 아직 조금씩은 목각인형 피노키오로 남아 있으니까. ●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문학과 삶, 여행과 감성에 관한 글을?쓴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그때 알았더라면?좋았을 것들』『헤세로 가는 길』등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