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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찾는 고품격 서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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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26면

1 여행자를 위한 책방 던트서점은 지붕이 유리로 돼 있다. 자연의 빛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책을 살펴볼 수 있다

주소 83/84 Marylebone High Street London W1U 4QW 전화 020-7224-2295 www.dauntbooks.co.uk

우리는 종로서적에서 만났다. 우리에게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종로서적. 종로서적이 없는 지금, 우리는 종로에 나들이하지 않는다. 1907년 문을 연 종로서적이 2002년 문을 닫는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방관하고 있었다. 단행본 출판인들 몇이 대책을 논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화유산을 하루아침에 폐기처분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때 우리는 보았다.


런던의 던트서점은 런던 시민들의 약속장소가 되고 있다. 런던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던트에서 만나자고 한다. 던트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데일리 텔레그래프)으로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에게 명문서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이 아름답다고 명문서점이 아닐 것이다. 비치하고 있는 책과 그 책을 골라내는 서점인들의 철학과 헌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런던 시민들의 안목과 성원이 던트를 명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디지털 시대에, 이 자본의 시대에, 결코 쉽지 않은 독립서점이지만 던트는 런던의 중심가에 여섯 개의 분점을 거느린 작은 서점그룹이 되었다.


 처세서나 진부한 가이드는 취급 안 해 던트 본점은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이야기되는 말리본 하이스트리트에 있다. 던트가 있기에 말리본 하이스트리트는 품격 있는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1912년 프랜시스 에드워드가 ‘서점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뉴욕의 투자은행 JP모건의 직원이었던 제임스 던트가 1990년 고서점 프랜시스 에드워드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여행자를 위한 던트서점(Daunt Books)’이라고 했다.


책이라는 이 불멸의 세계란 여행일 것이다. 독서란 그 어떤 여행보다도 경이롭다. 헤르만 헤세의 말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여행이고, 타인의 존재와 사유를 만나고 그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을 사랑할 것이다.


던트서점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큰길에 붙어 있는 입구에는 다양한 신간이 비치되어 있다. 소설과 에세이는 물론이고 넌픽션과 미술책과 어린이책이다. 그 안쪽에 매혹적인 여행서들이 있다. 책과 여행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책들이다.


한 서점의 품격이란 어떤 여행서들을 비치하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돈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외치는 처세서 같은 걸 던트는 취급하지 않는다. 고품격 여행서들을 갖고 있기에 던트다. 어디서 어떻게 쇼핑하느냐, 어디 가서 뭘 먹을까 하는 진부한 가이드는 던트의 주제가 아니다.


던트는 ‘나라별로 정리된 책의 세계’를 비치한다. 각 나라 코너엔 역사와 문학, 철학과 사상, 민속과 예술이 망라되어 있다. 그 나라를 심층으로 인식하게 한다. 진정한 여행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게 하는 책의 세계다.


1층 서가에는 유럽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2층에는 영국과 아일랜드 관련 책들이 있다. 지하의 넓은 공간엔 나머지 세계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중국·인도·아프리카·일본·미얀마·카리브연안 등으로 분류되었다.


중국 코너에는 『삼국연의』를 비롯해 피터 헤슬러의 『리버 타운:양쯔강에서 보낸 2년』, 톰스톤의 『중국의 대기근:1958-1962』이 있다. 인도 코너에는 E.M. 포스터의?『인도로 가는 길』, 헤르만 헤세의?『싯다르타』와 『간디 자서전』이 있다. 존 리 앤더슨의 『체 게바라』가 카리브연안 코너에 있다. 잔 모리스의 『세계여행기:1950-2000』도 있다.


던트서점은 유니크한 세계문학관이기도 하다. 문학 애독자들은 그 어떤 서점보다 다양한 문학서를 만날 수 있다. 제임스 미치너의 『히로시마』, 조지 오웰의 『버마에서의 나날들』, 펄 벅의 『대지』,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 제임스 엘로이의 『로스엔젤레스』, 한스 팔라다의 『홀로 베를린에서』가 내 눈에 들어온다.


미얀마 코너도 있지만 한국 코너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가 아직 일천하다는 것일까. 한구석에 황석영의?『바리공주』,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 이문열의 『시인』이 꽂혀 있다. 


“수준 있는 책 잘 비치하는 게 우리 일”지붕이 유리다. 자연의 빛을 몸과 마음으로 받을 수 있다. 우중충하고 변덕스런 런던 날씨를 고려한 설계가 아닐까. 겨울날, 진눈깨비로 거리가 질척거릴 때 런던 시민들은 포근한 던트에 들러 책으로 호사스런 세계여행을 누릴 수 있겠다. 던트에서 책으로 떠나는 여행은 우리 삶을 더 심오한 빛깔로 물들인다.


여기 윌리엄 모리스의 클래식한 천으로 꾸민 벽과 서가가 던트를 한층 고아하게 한다. 하긴 모리스는 위대한 여행문학가였다. 계관시인을 맡으라고 했지만 “나는 계관시인 노릇보다 책 만드는 일이 좋다”고 한 모리스. 19세기 중·후반에 그가 펼친 공예운동·디자인운동은 세계의 공예·디자인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지만, 그때 그와 그의 동지들이 디자인한 천과 벽지와 책은 지금도 고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모리스와 던트, 참으로 영국적인 이미지다.


던트서점을 명문으로 만든 경영철학과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던트의 동창으로 함께 서점을 창립해 지금 서점을 이끄는 브렛 울스턴크로포트를 만났다.


“수준 있는 책을 잘 비치해 놓는 것이 우리 일이다.”


직원을 뽑을 때 전문성을 중시한다. 다른 서점에서 일했다고 뽑지 않는다. 일단 던트에 입사한 직원들은 오래 일한다.


“우리 서점은 음악을 틀지 않는다. 독자들이 생각하면서 책을 살펴보게 한다. 책을 잘 아는 직원들이지만 독자들이 묻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서점에 오는 독자들은 스스로 책을 발견할 수 있는 독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품격 있는 서점이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는 슈퍼마켓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장사꾼 냄새가 나지 않는 분위기가 사실은 던트의 고품격 전략이다. 직원들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서점이다.


“독자가 책을 즐기게 하는 서점이 좋은 서점이 아닐까. 유리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즐기는 것도 던트를 찾는 독자들의 권리다. 던트는 큰 서점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책이나 비치할 수도 없다. 선택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간적 한계가 우리에겐 장점이 되었다.”


 

2 런던의 아름다운 거리 말리본 하이스트리트에 위치한 던트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다.3 제임스 던트와 함께 서점을 창립한 브렛 울스턴크로포트는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던트를 세계에 알린 르페르의 천가방오늘의 출판은 글로벌이 대세다. 주요한 책들은 거의 번역된다. 문학작품 번역도 대거 늘어나고 있다. 던트가 갖고 있는 3만여 종 가운데 픽션이 60~70%이고 넌픽션이 30~40%다.


“여성독자들이 소설에 돌풍을 일으킨다. 책의 세계에서 여성독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울스턴크로포트는 대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두고 있다. 딸들에게 킨들을 사주었지만 결국 종이책으로 돌아오는 걸 보고 있다. “전자책? 그건 일시적인 호기심이다. 종이책이 갖고 있는 장점은 그 어떤 매체와도 비교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으로 요란 떨면 안 된다. 킨들은 쿨하지 않다.”


서점에 놓고 간 킨들은 찾으러 오지도 않는다. 바닥에 굴러다닌다.


“종이책에 대한 도전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책은 모든 도전을 물리쳤다. 책은 언제나 승리했다. 전자책은 정점을 찍었다.”


괴물 아마존으로 독립서점들은 존재 자체가 어렵다. ‘책’이 아니라 ‘물건’으로 팔아치우는 아마존의 대량 할인 공세는 책에 대한 편견까지 독자들에게 강요한다.


“책방이 터무니없이 큰 이익을 남긴다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엔 인간들이 이렇게까지 몰락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절망감에 젖기도 한다. 25년 전엔 100부씩 팔렸는데 지금은 10부도 안 팔린다. 작은 서점은 서바이벌 자체가 힘들다.”


이런 상황이 던트의 의지를 강하게 단련시킨다. 아마존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저자와의 대화가 이어지고 출판사들의 신간 론칭이 진행된다. 2층의 가운데 책 진열대를 구석으로 밀고 행사장을 마련한다. 여행작가 폴 서룩스, 여행작가이자 배우인 마이클 페일린, 부커상을 두 번 받은 힐러리 맨틀,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 등 내로라는 작가·저술가들이 참여한다. 3월에는 ‘던트축제’를 연다.


던트가 짧은 기간에 세계의 명문서점으로 자리 잡는 데는 유쾌한 한 사건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2008년, 벨기에의 스타 모델 아누크 르페르가 패션잡지 에디터이자 약혼자인 제퍼슨 해크와 파리 튈르리 궁에 함께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휴고 보스와 샤넬의 명품 광고 모델인 르페르는 이 사진에서 명품 핸드백 대신 녹색과 흰색의 리넨 천으로 만든 던트서점의 쇼핑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친환경 천가방이 패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던트서점은 일약 세계인들에게 알려졌다. 세계의 서점으로 그 명성이 확고해졌다. 던트는 30파운드(약 5만3500원) 이상의 책을 사면 작은 가방을, 70파운드 이상이면 큰 가방을 선물한다.


“우리는 어떤 광고도 하지 않는다. 던트에서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이 가방을 즐겁게 들고 다닌다. 책 못지않게 이 천가방을 좋아한다.”


울스턴크로포트는 이 천가방을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당한 인도의 어려운 여성들이 회원인 한 협동조합에서 공급받는다고 했다.


던트의 창립자 제임스 던트는 지금 ‘특수임무’를 수행 중이다. 유럽 전역에 296개 서점을 갖고 있는 워터스톤(Waterstones)의 경영을 맡고 있다. 1982년에 출범한 워터스톤은 2011년 도산에 직면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러시아 갑부 알렉산더 마무트가 서점체인을 인수하고 던트서점의 제임스 던트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문학애호가로 아들을 영국에 유학 보내고 있는 마무트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서점이 사라지는 것이 가슴 아파” 투자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던트가 워터스톤의 운영을 맡은 이후 3년 간은 세계경제 침체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서점의 득세로 어려웠지만 2014년부터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김언호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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