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의 단 한수로 무너진 조한승6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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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20국
[총보 (1~201)]
白.曺薰鉉 9단| 黑.趙漢乘 6단

바둑판 위의 좋은 수는 구름처럼 많다. 그런 수를 두어 이겼을 때의 기쁨만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가슴아픈 실수도 모래알처럼 많다. 그 아픔만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프로는 애석하게도 쓰라린 패배를 더 잊지 못한다. 바둑이란 끊임없이 스스로를 욕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찰나의 방심, 그때 어김없이 파고드는 상대의 뼈저린 한수…. 프로는 그때마다 "나는 바보다"를 수십번씩 외치며 후회를 거듭한다.

이 한판도 조한승6단의 가슴 속에 비슷한 스토리와 아픈 기억을 남겼다.

흑을 쥔 趙6단이 19로 도발한 감각은 훌륭했다. 曺9단은 당하지 않기 위해 최강으로 맞섰고 그리하여 초반부터 천지대패가 벌어졌다. 그 결과 흑은 좌하를 35, 37로 뚫었고 백은 36으로 빵따낸 다음 38로 굳혔다.

모두들 "백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의 멋진 한 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39, 41이다. 이 장면을 재현한 것이 '참고도1'이다. 흑1로 둔 다음 3으로 모는 수순에 백은 4로 웅크릴 수밖에 없었고 흑은 떵떵거리며 살아버렸다. 흑 우세. 바둑이 이대로 끝났더라면 39, 41은 趙6단의 가슴에 달콤한 기억으로 오래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曺9단이 격렬하게 승부를 걸어온 우하의 전투에서 趙6단은 찰나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77이란 대실착을 범한다. 이 수로 '참고도2'처럼 흑1에 하나 붙여두었더라면 흑은 A를 겁낼 필요도 없고 B엔 C로 받아 그만이었다.

실전은 77의 실수 때문에 85로 구겨지는 비참한 행마를 강요당하면서 형세는 역전되고 말았으니 趙6단은 두고두고 이 순간의 방심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曺9단은 4승1패로 이세돌7단과 공동선두에 나섰고 趙6단은 2승2패로 처졌다.

201수 끝, 백 불계승(28=21, 34=18, 42=29)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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