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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북한 알기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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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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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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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개는 크고 작다. 작은 역사는 예고한다. 큰 역사는 전광석화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인간은 그 낌새를 알아챌 수 없다. 거대한 시대 변화는 예측 불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는 기적이다. 기적은 기습이다. 그해 초 동독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는 “장벽은 50~100년은 버틸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 격랑은 오만을 묵살한다. 동독의 변고(變故)는 날벼락이다. 서독은 기적을 낚아챘다. 그 329일 후에 통일이 이뤄졌다. 10월 3일은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일이다.

 큰 역사는 역설이다. 독일 통일은 역설의 승리다. 한국인에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25년 전 옛 서독의 정서는 한국과 달랐다. 그들의 통일의식은 빈약했다. 그들에게 민족적 숙원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빌리 브란트(전 서독 총리)는 “한반도 통일이 동·서독 재통합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사는 거꾸로 펼쳐졌다.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 시절 독일의 일반적 정서는 통일에 대한 갈망보다는 ‘통일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이 총장은 ‘먼 나라 이웃나라’의 국민 작가다. 그는 “동·서독 관계는 감상적·민족적이라기보다 합리·현실적 관계였다”고 했다. 동·서독 교류는 현장의 실용주의로 진행됐다. 기적은 그 속에서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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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통일은 거대 역사의 영역이다. 그 굉음도 기습하듯 울릴 것이다. 통일은 격동과 파란이다. 북한 핵무기는 장애물이다. 그것은 옛 동독과의 차이점이다.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의 통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가보지 않은 경지다. 북한 경제는 거덜 났다. 하지만 인간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도 연명한다. 경제난은 급변사태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북한은 마법의 핵무기를 가졌다. ‘남루한 행색 속 절대의 칼’-. 그런 존재는 함부로 대접받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일이다. 북한은 미사일·핵 실험 움직임으로 위협한다. 미국과 중국은 압박에 나섰다. 목표는 도발 포기의 현상 유지다. 한국은 북핵 해법의 종속변수다. 한국은 미국·중국에 의존해왔다. 평양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그 요청은 불가피하다. 우리 역량의 한계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10여 년을 넘었다.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북핵 문제는 국제 문제다. 동시에 우리의 문제다. 한국인의 운명을 결판 짓는 사안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북핵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북핵을 미·중의 해결 분야로 여긴다. 우리 사회에 관전자 심리가 퍼진 것이다. 그것은 자주 안보의지의 결핍으로 이어졌다. 통일의 여정은 북핵을 우회할 수 없다. 북한 핵무기 해결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종결자는 한국일 수밖에 없다. 자결(自決)의식은 새로운 관점을 넣어준다. 그 심리는 북한 문제에 투지와 감수성을 공급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이룬 한반도는 핵무기가 없고 인권이 보장되는 번영된 민주국가가 될 것”(유엔총회 기조연설)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공세적이다. 비핵화, 인권과 민주는 북한 체제와 거리가 멀다. 그 실현은 한반도 문제의 자결의지로 가능하다.

 큰 역사는 과거를 모방하지 않는다. 인간은 대비할 뿐이다. 그 시절 동·서독과 지금 남북한의 유사점은 적다. 하지만 교훈과 시사점은 있다. 대비의 첫걸음은 북한 알기다. 대다수 한국인은 북한의 자연·문화·역사·사람을 잊고 있다. 통일은 소명감과 담론, 이념논쟁에 머물러 있다. 박광호(한국농수산대) 교수는 “기성세대는 한반도에서 제일 추운 중강진, 동북아에서 가장 큰 수풍댐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농업기술을 전수했다. 박 교수는 “북한 지식이 부족하면 통일 문제가 어렵다”고 했다. 북한을 알면 북한이 달리 보인다. 상상력이 생긴다. 북한 주민의 배고픔과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드러난다.

 준비의 다음 단계는 ‘생활 속 북한’이다. 북한 문제를 삶 속에 넣는 것이다. 그런 모임이 우리 사회에 활발하다. 그 모임은 이런 물음으로 시작한다. “당장 북한과 교류하면, 지금 통일이 되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민병철(선플 달기 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교수는 “북한 주민을 위한 민병철 북한 관광 영어”를 만들었다. 이국종(아주대 의대) 교수는 “평양에 외상 의료 센터를 짓겠다”고 했다. 그는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다. 이들 교수는 ‘1090 평화와 통일운동’ 회원이다. 이들은 매달 북한 알기 공부방을 연다. 북한을 아는 지북(知北)파의 확장은 절실하다. 북한을 알면 핵무기 대처의 자결의지가 커진다.

 박 대통령은 “통일 한반도를 간절히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 꿈은 급습으로 실현될 것이다. 역사의 대전환은 신의 영역이다. 역사의 신은 지켜본다. 역사의 자결의지가 넘치는 사회에 행운을 준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