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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시행해보니…차라리 퇴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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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상 가운데 평균 10명 중에 3~4명 정도만이 수용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KB국민은행 A지점에는 지점장이 2명이다. 한 명은 지점장, 또 한 명은 선임 지점장이다. 선임 지점장은 올해 7월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이다. 같은 지점장이긴 하지만 선임 지점장의 주요 업무는 영업 후선 업무를 보조하는 일이다. A지점의 한 직원은 “선임 지점장은 실무자들의 업무 지원과 지점 내 통제, 감사 등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은행권, 월급 반으로 깎이고 동료 눈칫밥만 … 업력 짧은 카드·보험사도 도입 미미

KB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상자 가운데 9월 15일 기준으로 514명의 직원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갔다. 은행권에서는 국민은행을 포함해 KEB하나(하나·외환은행 따로 운영)·우리·KDB산업·IBK기업·경남·전북은행 등 11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은 내년 1월에 도입한다.

은행권, 직급·실적 따라 임금 차등 지급

지난 2005년 은행권 중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우리은행은 현재 약 500명의 직원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갔다. 국민은행과 비슷한 규모다. 이 두 은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은행들의 임금피크제 직원수는 미미하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현재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은 36명에 그친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되기 이전 하나은행의 임금피크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2005년 도입)은 8명에 그친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월급도 대폭 줄고 눈치까지 보면서 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 가운데 평균 10명 중에 3~4명 정도만이 수용하고 있다.

은행들은 일찌감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직원들은 이 제도를 반기지 않는다. 월급은 반으로 깎이고 동료에게 눈칫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은 다른 업종에 비해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감액률이 크다. 임금피크에 들어가면 연봉이 첫 해에는 기존 연봉의 70~50%밖에 받지 못한다. 마지막 해에는 30% 정도에 그친다. 여기에 업무도 대출 서류 검토나 채권 추심이 대부분이다. 은행맨 사이에서 “임금피크제를 택하느니 퇴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면서 은행들이 기존의 임금피크제 임금 조건이나 업무 유형을 넓히고 있지만 여전히 반응은 시큰둥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 5월 제도를 재정비했다. 지난해까지는 만 55세 때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면 급여의 50%를 일괄 삭감했지만 올해부터 월급 50% 받고 60세 정년까지 일하거나, 27개월치 특별퇴직금을 받고 희망퇴직을 택하거나, 영업 현장에서 본인의 실적에 따라 기존 연봉의 최대 150%를 받는 등 임금피크제 유형을 넓혔다.

내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신한은행은 부지점장 이상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차등형 임금피크제를 적용키로 했다. 예를 들어 내년에 만 55세가 되는 A지점장이 정년인 만 60세까지 뛰어난 성과를 올리면 종전 급여의 100%를 주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과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임금피크제) 기간 연장이 되는 것도 아닌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고 말했다.

카드 업계는 그간 임금피크제 도입 논의가 종종 이뤄졌지만 실제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한 곳은 많지 않다. 대체로 업력이 짧아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인력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게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KB국민카드가 카드 업계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55세부터 연봉을 직전 연봉의 50%로 삭감하는 대신 60세까지 정년을 연장해주는 감액형 방식이다. 모두 5명이 임금피크제의 적용 대상이었으며, 이 중 세 명은 특별퇴직했고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직원은 두 명뿐이다.

카드 업계는 사실상 임금피크제 도입 첫 해인만큼 효과를 논하기엔 이른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올해 처음으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인력이 나와 첫 적용을 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노사가 원만히 합의한 만큼 향후 잘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업계 카드사 중에서는 삼성카드가 2016년 1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카드는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56세부터 10%씩 임금을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보험 업계도 카드 업계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한 지 9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낮은 편이다. 39곳 생·손보사 중 6곳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확정했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을 결정하면서, 보험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도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NH농협생명과 NH농협손해보험 측도 “2016년 1월 1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동부화재와 롯데손해보험도 내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들 보험사를 제외한 다른 보험사는 “임금피크제 시행을 검토 중”이라거나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안에 도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KB손해보험은 LIG손해보험 시절이던 2012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KB손해보험은 기존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2년 연장하면서 54세부터 임금이 하락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는 게 KB손해보험의 설명. “전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용한 게 아니라 신청자 일부만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임금피크제 신청자도 거의 없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과정에서 임금피크제는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제도 자체를 중단한 상황이다.

KB국민카드, 임금피크 적용 직원 단 2명

이처럼 보험 업계 역시 임금피크제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보험사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상황도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보험 업계는 제조업종 대비 업력이 비교적 짧은 편이라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층이 상대적으로 적어 임금피크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어려운 구조다. 하나생명은 2003년 설립됐고, NH농협생명·NH농협손해보험은 2012년 출범했다. 가장 역사가 긴 미래에셋생명의 전신인 대전생명보험도 1988년에 설립돼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둘째, 보험 업계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보험 업계는 인력순환이 빠르고 제조업에 비해 젊은층이 많다. 대상 연령층으로 보나 인력구조로 보나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인 만큼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논의를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노조 측의 무관심 혹은 반대로 노사교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는 강제성이 없고 젊은 노조원들은 임금피크제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글=이코노미스트 김성희·문희철 기자 kim.sungh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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