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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이 옷 맞춘 양복점, 3대 이어 100년째 ‘현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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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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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탕에 있는 낡은 장기판과 장기알. 이용객들은 목욕을 마치고 장기를 두기도 한다.

‘추석을 보름 앞두고 갖가지 생활필수품 값이 오르고 있다. 이발료는 180원, 목욕탕은 50~60원까지 받고 있다. 서울시 당국은 위생 감찰권을 발동해 철저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 미래유산 ④ 생활 속 문화재
용산 원삼탕 50년째 “목욕합니다”
개업식 땐 국회의원도 참석 축하
88년간 이어온 만리동 성우이용원
빗·가위로 하는 전통 이발법 지켜

 1967년 9월 본지에 실린 기사다. 정부는 명절 때면 목욕·이발비용 등을 생활필수품목으로 분류해 중점 관리했다.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대엔 명절이 아니면 때 빼고 광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은 풍요로워졌다. 공중목욕탕은 사우나와 스파에 자리를 내줬고 이발소는 헤어숍에 밀려 사라지고 있지만 시민들 삶 속에서 아직도 새로운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곳들이 있다.

 원삼탕이 문을 연 것은 1966년이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에 있다고 해서 창업자인 황옥곤씨가 지은 이름이다. ‘새마을 목욕탕’으로 지정돼 개업식에 국회의원까지 참석했다. 당시 드물었던 한증막을 완비한 데다 남탕과 여탕이 1·2층으로 분리된 구조가 인기를 끌었다. 개업 때부터 일한 기관장 최종철(73)씨는 “지금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있었던 청과시장 상인들이 일을 마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곤 했다”며 “명절 때는 하루 1000여 명씩 손님이 밀려드는 통에 목욕하다 엉덩이가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지난 22일 찾은 원삼탕 입구엔 빨간 팻말에 새겨진 ‘목욕합니다’라는 문구가 시민들을 반기고 있었다. 탈의실 평상에 펼쳐져 있는 장기판과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전화번호부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님 수가 하루 50여 명으로 줄었지만 이곳은 오랜 단골들에겐 여전히 안식을 주는 장소다. 서울시는 2013년 원삼탕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단골인 조경훈(58)씨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다 아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중구 만리동에 있는 성우이용원은 1927년 세워진 뒤 한 자리를 지키며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한 곳이다. 서재덕씨가 지금의 위치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사위인 이성순씨가 60년대까지 이곳을 지켰다. 이씨는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이발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부르주아’라는 죄목으로 인민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아들 이남열(65)씨가 이발소를 물려받은 70년대 이후로는 퇴폐이발소가 성행하는 통에 경영난에 시달리며 폐업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이씨는 “바리캉 대신 가위와 면도칼·빗만으로 머리를 손질하는 전통 이발 방식을 선호하는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3대를 이어온 ‘현역’ 서울시 미래유산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1916년 문을 연 종로양복점은 100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종로의 주먹’ 김두한이 단골로 옷을 맞춰 입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의 손자인 이경주(70)씨는 69년 양복을 짓기 시작한 이래 숱한 ‘서울 멋쟁이’들의 옷맵시를 책임져 왔다. 이씨는 “3대째 이어져온 이 공간에는 나와 이웃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며 “명절 때면 찾아와 양복을 맞춰 입고 가던 시민들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글=박민제 기자, 정현웅(성균관대 철학과)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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