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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나비 달아줬으니 잘될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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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양주 할머니는 지난해까지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위안부 피해 관련 행사에도 참석했지만 올 들어 건강이 악화되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윤정민 기자]

지난달 12일 경남 마산의 한 요양병원. 김양주(91) 할머니가 병실 한쪽에 누워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 등의 병마로 할머니는 괴롭다. 최근 들어 치매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위안부 피해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지난해 8월 18일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마지막 날이다. 가톨릭 신자인 김 할머니는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과 함께 교황이 명동대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 참석했다.

피해 할머니들은 당시 ‘모든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억압, 차별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담긴 노란색 나비 배지를 교황에게 건넸다. 나비 모양 배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날개가 되길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였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했으면 좋겠다. 우리 나이가 너무 많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교황님께서 오셔서 희망을 주셨으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그것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배지를 제의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김양주 할머니는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참석해 교황에게 노란 ‘나비 배지’를 건넸다. 나비 배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만든 후원물품이다. [뉴시스]

 그로부터 1년여가 흘러 병상에 누운 김 할머니는 “다른 건 모르겠다. 아들… 아들 그놈이 ‘자식도 없는데 불쌍하다’며 내 아들이 돼줬다”는 말만 반복했다. 요양병원에서 대중교통으로 10분 거리에 살며 병 수발을 하는 수양아들 홍모(69)씨 얘기다. 홍씨는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1924년생인 할머니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먹고살기가 힘에 부쳤다. 그러던 중 마산에서 만난 사람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하자 따라 나섰다. 그 길로 위안소로 끌려갔다. 할머니가 어디에서, 몇 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는지는 정확지 않다. 등록 당시 그런 내용을 구술했으나 관련 자료는 다른 할머니에 비해 자세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외부에 따로 공개하거나 증언한 적도 없다.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져 추가로 증언하기도 어려워졌다. 다만 그때 일을 물으면 김 할머니는 “기억 안 난다. 아팠다. 그전엔 내가 똑똑하고 그랬는데…”라고만 말했다.

 해방 이후 귀국한 할머니는 마산에 정착해 살았다. 하지만 학교를 다닌 적 없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식모 생활을 하거나 식당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가난과 어릴 적 상처 때문에 따로 가정을 꾸릴 엄두는 못 냈다.

그때부터 할머니 곁을 지킨 사람이 홍씨였다. 고희를 목전에 둔 수양아들은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옆집에 사시던 지금의 어머니를 자연스레 모시게 됐다”며 “나도 어머니도 의지할 곳 없던 삶에 가족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고 부대끼고 살아온 지 벌써 50년이 다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할머니가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수양아들이 병문안 올 때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찾아오는 홍씨는 한 시간 정도 할머니를 보살피다 돌아간다.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인은 “할머니가 아들이 오면 정신도 조금 맑아지시고,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아들은 지난해 혈전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 즈음 할머니의 건강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하나하나 잊어가고 있다. 홍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가끔 그때(위안부 시절) 괴로웠던 기억들을 꺼내 얘기하시기도 했는데 지금은 기억도 못하신다. 또 말 꺼내봐야 더 고통스럽기만 한 일인데 이제 와서 얘기하면 뭐 하겠느냐”고 했다. 홍씨는 “다만 어머니가 자신이 겪은 고통의 세월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려 왔고 위안부와 관련된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도록 노력해 온 것을 후대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산=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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