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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K께 바치는 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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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K대표님께.

 여름 끝자락이라 밤낮의 기온 차가 제법 심한데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신지요?

 얼마 전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몰두하신 제품 개발이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지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각고의 노력과 마음 씀을 아는 저로서는 그 소식이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한 편으로는 가슴 벅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문득 처음 K 대표님과 인연을 맺을 때가 생각 납니다. 5년 전 여름 초입이었지요. 대표님께서 투자유치를 위해 회사와 기술을 소개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대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 개발을 이끈 주역이셨죠. 거기에 두어 차례 벤처기업도 경험하신 분께서 어려도 한참 어린 조카뻘 정도 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 앞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2시간 가량 열정을 다해 회사와 기술과 본인의 인생역정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진솔하신 태도와 경륜이 묻어 나는 자신감은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날 대표님은 당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왜 적어도 20여년 이상의 축적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 수 차례 강조를 하셨지요. 아직도 제 머리 속에는 ‘저희 회사의 경영진을 비롯한 전 직원의 평균 연령이 48세입니다’라는 말씀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실 지난 5년 동안 때로는 ‘이 정도 개발이 되었으면 이제 시장에 내어 놓으시면 안되나?’하는 조바심과 ‘과연 이 제품의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시장에 내놓아야 매출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렇게 회사가 돌아가야 추가 투자나 혹은 그 이후를 생각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음을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쉽게 움직여 추가로 투자 받기 보다는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내놓으실 만큼 대표님은 기술 개발에 주력하여 제품의 품질을 완성하는데 힘쓰셨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압박감을 이겨내시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모습에 또 한 번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고집스럽게 완벽을 추구하신 결과로 흠결 없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한편으로 저의 조급함을 깊이 반성했습니다. 저 역시 스타트업에 투자한지 올해로 20년을 넘어서고 있고 늘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하게 갈 길을 가자고 다짐도 하며, 긴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초심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음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 환경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초기 기업의 성장을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들의 등장으로 인해 젊은 창업가들이 누리고 있는 창업을 둘러 싼 환경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사무실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멘토링을 통해 회사를 소개하는 자료도 척척 만들어 내기도 하고, 발표는 또 얼마나 세련되게 하는지 청중들이 많으나 적으나 전혀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젊은 창업자들의 용기 넘치는 도전정신이 스타트업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들에게 부족한 경륜과 인내가 아쉽기도 하고, 풍요로운 주변 환경에 행여 너무 매몰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님의 제품 개발이 반갑고, 누구보다도 성공하시길 절실하게 원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언급하면 바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청년들의 창업’입니다. 물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도전하는 데 있어 젊은이들이 가진 에너지는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창업’의 열정 못지 않게 뚝심을 가지고 사업을 꾸려나가는 실행력이 더욱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대표님처럼 성숙미 넘치는 열정과 함께 경험에서 우러난 버팀의 근력을 가지신 분들이 창업 열기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중년, 혹은 시니어 창업이 활성화 되기를 바라면서 대표님이 등대가 되어 길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리며, 제품개발의 성공을 다시 한 번 더 축하 드립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