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무리한 현행범 체포 막으려다 경찰관 폭행한 20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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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억울하게 체포되는 것을 옆에서 막다가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의 체포 근거가 부족했고, 이를 막은 것은 정당한 저항이라는 판단에서다.

서울 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경찰관의 현행범 체포를 방해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겨진 임모(2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임씨는 지난해 10월 12일 오전 7시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주점 앞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신의 친구인 김모씨를 체포해 순찰차에 태우려 하자 이를 가로막았다.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친구를 범죄자로 단정한 것에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찰은 임씨가 당시 출동한 이모 경위를 제지하면서 팔을 세게 잡아당긴 점을 공무집행방해라고 보고 그를 입건했다.

이 경위는 법정에서 “김씨가 술집의 다른 손님인 이모씨의 얼굴을 때려 두 일행이 대치 중이었기에 패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임씨의 손을 들어줬다. 폐쇄회로(CC)TV 등 증거가 부족하고 경찰 증언의 구체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씨가 술집 다른 손님인 이씨를 폭행했다고 할 만한 정황을 찾기 어려워 당시 경찰의 공무집행은 적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폭행 피해자인 이씨도 김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았다고 당일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 확인도, 추가 조사도 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공소사실에도 ‘폭행 사건의 현행범으로 체포’라고 추상적으로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사기관조차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신빙성 없는 경찰 공무원들의 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을 종합하면 ‘김씨가 이씨를 폭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당시 공무집행은 적법성이 결여됐다” 면서 “임씨가 김씨의 체포를 막으려 이 경위를 폭행했다 하더라도 이는 부당한 공무집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므로 공무집행방해죄로 다스릴 수 없다”고 밝혔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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