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공무원노조의 이익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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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가까스로 합의됐다 싶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놓고 여야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싸움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이는 것을 명시하느냐 마느냐로 불붙는 양상입니다. 원래 쟁점인 공무원연금 개혁은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연금이 이슈로 전면에 떠오른 것입니다. 하기야 여야 합의안이란 게 ‘개혁’이란 말 붙이기 민망스러울 정도였으니 국회에서 통과됐다 해도 비난을 받았을 겁니다.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깊은 논의도 없이 국민연금이 세트로 등장한 것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발단은 공무원노조가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면서 국민연금 강화를 내세운 데서 시작됐습니다. 노조의 전술을 보니 19세기 오스트리아 법학자 로렌츠 폰 슈타인의 주권선/이익선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주권선은 절대 침해당할 수 없는 주권적 영역이고, 이익선은 주권선보다 넓게 둘러친 채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사하는 구역을 가리킵니다. 주권선 방어를 위해선 이익선의 확보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지요.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연금을 주권선으로, 국민연금을 이익선으로 설정한 것 아닙니까. 국민연금으로 쟁점을 확대시켜 자신의 연금을 지켜낸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공무원들 역시 우수합니다. 그들의 우수함 탓에 국민의 주권선이 침해당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이상한 것은 여기에 덥석 올라탄 여야입니다. 특히 야당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과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춘 게 누구였습니까. 노무현 정부였습니다. 초기에 이를 담당했던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앙적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했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진보 진영 지지자들에게서 “실망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합니다. 그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유시민도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제도(국민연금)는 지금 이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또 지금 정부가 도모하는 식으로 수정을 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존속될 가능성도 높지 않은 제도로 이미 돼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진보적 이념 좌표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에 비중을 뒀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당시 열린우리당의 김진표 정책위 의장이 야당인 한나라당의 국민연금 개정안을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을 정도였습니다. 정권이 바뀌니 여야는 과거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국민연금 강화론에 대해 야당은 노무현 정부 때 전제로 삼았던 기초노령연금 소득대체율 인상(5%→10%)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을 재추진해야지, 왜 더 크고 복잡한 국민연금을 먼저 건드리려 합니까. 그때 잘못했으니 이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바로잡겠다고 하는 게 차라리 당당하지 않을까요.그래도 하나는 건진 게 있습니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대립 구도였던 지역감정이나 진영논리와는 달리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정당정치에 복지정치의 기제가 작동하게 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직후부터 아닌가 합니다. 진보 성향의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복지정책이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당정치의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정당의 복지공약은 이념 좌표보다는 정당들의 경쟁적 역학관계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실제 2012년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붉은 유니폼 입고 경제민주화 내세워 대선과 총선 모두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도 정당의 권력위상이나 경쟁역학에 따라 복지정책의 방향이 결정될 듯합니다.어떤 형태이든 연금을 둘러싼 대립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정책목표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재정건전성 확보와 복지 강화라는 길항적 가치 말입니다. 둘 다 살릴 수 없다면 우리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일각에선 과잉복지를 걱정하지만, 우리의 복지 수준을 놓고 과잉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 웃을 겁니다. 진짜 큰 문제는 절대적 과잉 여부가 아니라 한정된 재원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 따지지 않은 채 비효율적으로 퍼붓는 복지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절대불변,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는 것도 재고해볼 문제입니다. 재정건전성이 나빠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곤 하던 일본의 경제는 지금 어떻습니까. 아베노믹스 덕분으로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우리는 온통 경제 걱정입니다.결국 뭐든지 도그마에 빠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접점과 균형을 찾으려는 치열한 논리 투쟁은 언제나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채 나온 공무원연금의 ‘유사품 개혁안’이 무산된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노조의 이익선을 넘어,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 하는 주권선까지 돌파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금주 중앙SUNDAY는 ‘연금정치’로 표현되는 우리 정당정치의 전개 방향을 분석해봅니다. 이제 한국의 정당들도 구시대적인 지역구도에서 벗어나 연금정치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확인해보겠습니다. 또 우리보다 훨씬 앞서 연금정치 국면에 진입한 서구 사례들과도 비교해 봅니다.[관련기사] 지급률 20년간 겨우 0.2%포인트 줄여 … 전문가들 “낙제점 개혁안”생색만 낸 공무원연금 개혁지난주 중앙SUNDAY 칼럼 가운데 남북 통일 이후의 예상되는 난제들을 지적한 글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의 ‘시대공감’이었지요. 제3자의 냉철한 시각에서 당사자인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시점을 제공한 글이었습니다. 금주에는 ‘신흥시장 투자의 대가’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이머징마켓 그룹 회장의 칼럼을 게재합니다. 세계 최고 전문가의 식견을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관련기사] [존 에버라드의 시대공감] 남북통일 후를 상상해 봤는가한국 외교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외교전략을 읽지 못한 채 고립을 자초했다는 지적들이 그 배경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기는커녕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될 듯합니다. 중앙SUNDAY는 지난주 이 문제를 사설과 전문가 대담으로 다뤘습니다. 앞으로도 중대 이슈로 계속 주시해보겠습니다.[관련기사]“朴 대통령 6월 방미, 외교적 고립 돌파 기회로 삼아야”[전문가 진단] 미·일 新밀월시대,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은[관련기사][사설] 외교안보 라인, 더 늦기 전에 쇄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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