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核 포기가 6·15정신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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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평양의 6월 15일은 7천만 한민족이 모두 하나가 되는 듯한 환희와 감격의 날이었다. 전세계도 한반도에서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시대를 마침내 맞이하는 것이 아니냐고 보는 듯했다. 분단 후 남북한 정상이 가진 첫 대면은 그만큼 상징성을 내포했고 희망을 부추겼다.

그러나 3년 후 우리는 그것이 남북의 두 金씨간 정치적 위계(僞計)와 상징조작에 놀아난 백일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겉으로의 대의(大義)와는 달리 서로 다른 속셈으로 정상회담에 임한 필연적 결과라고 하겠다.

金위원장은 평화통일의 열망을 담은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그 시점에 이미 핵개발을 진행시키는 암수를 쓰고 있었다. 金대통령도 자신의 정치적 위상과 국제적 명망을 높이려고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최근 드러나는 대북 비밀송금 5억달러의 실체는 양자의 이해를 접합시킨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남북한 간의 외형적인 교류.협력의 활성화 추세와는 달리 본질 문제의 진전이 이뤄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족공조를 통한 평화통일의 목표가 진척되기 위해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풀려야 한다. 그것은 상호 신뢰와 민족공동체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한 것은 처음부터 바로 이런 전제를 도외시한 채 등 뒤에서 6.15정신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북한이 남쪽에 대해 6.15정신의 구현을 감히 촉구하기 전에 먼저 핵을 즉각 포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도 6.15가 한반도 안정화를 촉진했다는 헛된 가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북한 핵이 평화의 위협으로 엄존하는 한 개성공단을 비롯한 대규모 경협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 핵포기 결단을 내릴 때까지 우리는 한.미 공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신기루를 좇는 정책으로는 우리의 안전과 평화통일이 이뤄질 수 없다. 6.15정신의 구현은 북핵 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