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대입전쟁…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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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사자는 물론 그 부모와 형제자매로부터 시작해서 이웃, 사돈에 8촌까지를 통틀면 가히 전국민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초조와불안,눈치와 배짱, 루머와 정보의난무속에 학력고사성적과 지원서를 손에 쥐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는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지난 14일 마감시간을 불과 두어시간 앞둔 대학입학원서 접수창구의 표정은 화툿장을 손에들고 마지막 전재산을 걸어보려는 도박판의 노름꾼을 방불케 했다.
수험생이 있는 집의 전화는 대입학력고사성적이 발표된날부터 하루종일 통화중이었다.
모방송사의 입시상담전화번호를 1백번도 더 돌렸으나 통화할수 없었다는 한 학부모는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좀 연결시킬수 없겠느냐고 엉뚱한 짜증을 쏟아붓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문의는 한결같이 이점수를 가지고는 어느대학 무슨과가안전하겠느냐였다.
이 끗발읕 가지고는 얼마만큼 베팅(돈걸기)을 해야겠느냐는 노름판 심리와 다를바가 없었다.
이점수를 가지고 무슨과를 가야겠는데 어느대학이면 가능하겠느냐고 묻는상담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제 접수창구에는 정적이 되찾아왔으나 수험생과 가족들의 마음은 경쟁률과 커트라인에 쏠려있다.
경쟁률이 낮으리라고 예상했던 과가 그러한 예상이 집중되는 바람에 오히려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해버린 경우도 있을것이고 배짱좋은 투기심리가 적중한 행운아도있을 것이다.
어떻든 입학정원은 채워질 것이고 85학년도에 수용할수 있는 전국대학의 입학정원 20여만명은 진학하게 될것이다.
문제는 이들가운데 상위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들의 장래희망에 따라 원하는 과를 선택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붙고 보자」는 식으로 되는대로 전공이 결정돼버렸다는 점이다.
한 젊은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기의 뜻을 세워 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는 전공학과를 선택하며, 이전공에 가장 이상적인대학으로 자기 실력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안에서 진학하는 것이 정도임은 말할나위가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에서는 학생의 진로나 의지같은 것이 겨우 문과냐, 이과냐 정도로 나눌수 있을 뿐 (그것도 고교1학년의 철부지 시절에 결정되는 현실이지만) 거의 묵살당하고 있으며 오직 요행과 우연에 의해 장래가 결정되고 있다.
이렇게 인생의 전공을 「떠맡은」젊은이에게 전공에 대한 사전지식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전공에 대한 집념이나 애착이간절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83학년도 서울시내 6개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각 대학이 실시한 조사에서 전공과목에 대한사전지식이 없었던 학생이 연세대 34·1%,서울대 30·2%,숙대 25·6%, 고려대 17·6%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입학하고 한학기쯤 지나면 전과를 희망하거나 아예 전공을 포기하고 새로 수험준비를 시작하는 학생들도 적지않다고 한다.
도박판식 입시전쟁은 고등학교에서의 진학지도에서도 큰 요인이 발견된다.
고교평준화이후 생긴 이른바 일부 신생 명문고교에서의 자기학교의성가를 높이기 위한 왜곡된 진학지도가 그것이다.
세칭 일류대학진학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이 자기가 희망하는 학교와 학과를 무시하고 교사들이 지정하는 학교의 학과에만 강제로 원서를 내도록하여 학생의 진로를 그들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는 몰지각하고 비교육적인 작태를 전횡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학교에서는 ○대학에 ○명을입학시켰다』 는 실적올리기에 위해 학생들의 장래가 좌지우지되는 이엄청난 횡포가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눈치와 배짱으로 일관하는 아파트당첨투기식 대입제도, 학교의 명예욕에 급급한 진학지도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배울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보상을받는다』 는 바람직한 순리일 수는없을 것이다.
요행과 요령에 의한 성취제일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출세지상주의를 조장할 뿐이다.
이러한 풍토속에서는 대학은 지식의 축적과 인성의 연마라는 목적의 장이 아니라 취직에 필요한 졸업장을 따겠다는 수단의 양 내지는 『남들도 가니 나도 가야지』하는 한낱 낭비의 장으로 그 존재가치가 전락하고 만다.
입시제도가 어떻든 그해 책정된 입학정원은 채워지고 입시 열기는 식지 않는다.
그렇다먼 학생들에게 올바른 대학관을 심어주고 올바른 학문의 자세를 갖춰주는 방향으로 입시제도는 개선돼야 마땅하다. 노계원<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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