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야당 회의실 복도에 새로 놓인 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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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대학생 인턴기자

'자녀 학교에 580만원 기부, 교회에 170만원 헌금. 자서전 수익 5억원에 연봉 5억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면 백악관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된다. 대통령 연봉과 소득세 납부내역 같은 기본 사항부터 기부금과 연말정산 내역까지 모두 공개돼 있다. 심지어 자서전으로 얼마를 버는지, 주택 대출은 어떻게 갚고 있는지, 어디에 투자해 수익이 얼마나 났는지도 나와 있다. 현직 대통령만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연말정산 신고 내역도 공개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공개는 높은 참여를 이끌어낸다. 2012년 재선에 성공할 당시, 오바마 캠프의 선거자금 중 28%가 소액 기부자에게서 나왔다. 자신이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스스로 지갑을 열었다. 정치권이 투명함을 보여주자 유권자들이 신뢰를 보낸 것이다.

이런 선순환을 찾아보기 힘든 국내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오는 11월부터 일명 '안희정법'으로 불리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세입·세출을 매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해야 한다. 규정대로라면 단체장이 전날 얼마짜리 점심을 먹었는지까지 공개 대상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국민의 정치불신이 다소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 최근 의자가 놓였다. 매일 차가운 바닥에 앉아 브리핑을 컴퓨터로 받아치는 기자들을 보고 한 당직자가 약속했던 사안이다. 신선했다. 정치인들은 공약만 내뱉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내 삶에 작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었다. 마음에서 신뢰가 자라나는 느낌이 들었다.

인턴기자 활동이 이번주 끝난다. 취재처였던 국회에서도 떠난다. 한 시민으로 돌아가서도 작은 의자에서 받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수가 이런 감정을 갖게 되면 비로소 정치권과 국민이 화해하게 되지 않을까.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7%가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입장을 밝혔다. 세금이 아까울 정도로 제 몫을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민심을 되돌리려면 겉과 속이 투명한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권이 약속을 행동으로 증명하면 국민들은 지갑에 앞서 마음부터 열 것이다.

김유진 대학생(고려대 국문과) 인턴기자 cwwolo_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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