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지우기라니요…전문직 자존심 믿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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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한민국 정부의 부처 가운데 문화재청장만큼 오지랖이 넓은 기관장도 없다. 순수하게 직접 관할하는 문화재보존지구만 3억5천만 평인데다 매장문화재로 따지면 300억 평되는 전국의 땅은 물론 그보다 4.5배나 넓은 바다도 모두 그의 소관이다. 국토의 200억 평을 관리하는 산림청장도, 바다를 주름잡는 해양수산부장관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혹시 높이를 따질 수없는 '하늘의 관장자' 기상청장이라면 모를까. 가뜩이나 성정이 '고요'하지못한데다 직책마저 이렇다 보니 유홍준 문화재청장(사진)은 늘 바쁘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엔 늘 뉴스가 생기고, 뉴스가 있는 곳엔 항상 그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광화문 현판을 바꾸겠다고 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더니 독도 문제가 터져 외교통상부장관을 제치고 마이크를 잡았다. 낙산사가 불이 붙고 나서 현장에 나타난 그다.

-독도 개방 이후 탐방인원을 늘려야한다는 여론이 많은데.

"현재 한번에 독도에 이를 수있는 인원이 70명입니다. 독도에 접안시설이 지금은 650 평밖에 안 돼 어쩔 수 없습니다. 시설 증축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 안을 만들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 올려 의견을 물어 결정할 겁니다."

-낙산사는 어떻게 하나.

"절측에선 여러가지 구상이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중창불사와 문화재 복원은 다릅니다. 알아보니 건물 38채중 건축물 대장에 오른 게 13개뿐입디다. 우선 발굴 작업을 해 원래 모습을 확인한 뒤 그에 걸맞는 것만 복원할 겁니다. 낙산사측이 200억원이라고 얘기하는 복원비용은 문화재쪽에서 보면 30억원밖에 안됩니다."

-산불 등 화재에 대해 문화재 보호대책은.

"이번에 크게 느꼈습니다. 대형 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한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광부와 행자부.산림청.환경부 등과 협의해 발생즉시 가능한 지원이 동원되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자체적으론 일본과 같이 사찰 등에 스프링쿨러 시스템을 도입할 겁니다."

-그동안 말많던 광화문 현판은 어떻게 되나.

"사실 오해가 많았습니다. 비판적인 여론의 핵심은 광화문 자체에 대한 복원은 놔두고 왜 현판만 먼저 바꾸냐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용역을 맡기는 등 고심한 결과 아예 광화문 자체를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광화문은 당초 경복궁 복원대상으로 2009년께 가능할 것으로 봤는데 최근 광화문 앞 교통문제 처리 등을 감안한 복원책 용역결과 이르면 내년안에 광화문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굳이 현판을 먼저 바꿀 필요가 없어진 거죠. 최근 서울시 등과 협의한 결과 사직단과 동십자각을 잇는 교통선을 없애고 현재의 광화문 앞에 광장을 만드는 방안에 의견 접근을 봤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복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에게 아부'니 '박정희 지우기'니 하는 오해가 없어질 것으로 보나.

"문화재청장은 차관급이든, 1급이든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입니다. 대통령과 총리가 문화재청장은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게 바로 전문직의 프라이드인데, 그런식으로 얘길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옛 경기여고 자리 문제는.

"경기여고 터와 아관파천 길까지 모두 7800평인데 미대사관이 이사하는 용산 땅 2만4000평과 맞바꾸기로 이미 합의가 끝났습니다. 원래 국방부장관과 미대사가 교환 대상자인데 모양새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제가 사인할 것 같습니다. 선원전 등 옛 건물 네 채는 복원하고 1920년대 지어진 일본풍의 건물 두 채와 지하 방공호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겁니다."

글=이만훈.이경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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