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군" 배경] 병력 줄이고 戰力은 강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주한미군 1만~1만5천명 감축 가능성을 밝힌 가이 애리고니 미 국방부 정보국 동아시아 국장의 12일 발언은 올 들어 한.미 간에 발표된 공식 입장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다.

한.미는 두 차례 한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공동 협의' 등에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은 논의된 바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감축을 '당연한 수순'으로 분석해 온 군사전문가들은 애리고니 국장의 발언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

전문가들은 "숫자가 줄어든 대신 전투력이 증강된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미군의 새로운 전략이며 이는 한국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애리고니 국장의 발언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 LA 타임스 인터넷판은 지난달 28일 미 행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핵위기와 맞물려 아직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감축도 카드 속에 들어 있다"며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검토되고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또 한.미 관계 전문가들도 애리고니 국장이 거론한 1980년대 말 수립된 동아시아 전략 구상 계획은 미 행정부가 '넌-워너 수정 법안'에 따라 1990년 4월 의회에 제출한 '21세기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전략 구상(EASI)'으로, 이 구상이 재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89년 11월 상원 군사위원장 샘 넌과 상원의원 존 워너가 제출, 미 상.하원 합동위원회가 통과시킨 '넌-워너 수정 법안'은 ▶주한미군을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감축▶특정 임무와 작전권 한국에 반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미 행정부는 EASI를 만들어 의회에 제출했다. 폴 울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현 국방부 부장관) 등이 의회에 설명한 이 구상에는 3단계 감축안과 작전권 한국 이양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감축안은 ▶1단계(90~92년)는 병력 7천명 감축▶2단계(93~95년)는 남북 관계 등을 검토한 뒤 2사단 병력의 삭감 등 재편 모색▶3단계(96년 이후)는 한국군이 방위의 주도적 역할 수행 등 단계적 구상을 밝혀놓았다.

미국은 이 구상에 따라 92년 공군병력 2천명과 지상군 5천명 등 7천명을 감축했으나, 93년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자 감축을 중단했다.

윤덕민(尹德敏.외교안보연구원)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세계 군사전략에 맞춘 새로운 EASI를 만들어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철희.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