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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불화로 삼성 후계 구도서 밀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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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12면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고 이맹희(사진) CJ 명예회장의 빈소가 이르면 17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오랜 기간 암투병을 해온 이 명예회장은 지난 14일 오전 9시40분(현지시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84세. 15일 CJ그룹에 따르면 고인의 차남인 이재환(53)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와 장손인 선호(25·CJ제일제당 근무)씨가 현재 중국 현지에서 운구 절차를 협의 중이다. CJ그룹 관계자는 “가능한 한 빨리 서울에 모실 수 있도록 중국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17일 오후나 18일에 서울에 올 수 있다. 발인 날짜는 유동적이나 20일 또는 21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맹희 회장에게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고인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회장의 3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북중(6년제)을 거쳐 일본(도쿄농업대)·미국(미시간주립대 경제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창업주의 장남으로 잠시 그룹 전체를 맡기도 했지만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반목하면서 경영에서 배제됐고 그룹 경영권은 삼남인 이건희(73)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병철 회장은 장남에게 줄 재산을 며느리인 손복남(82) 여사와 장손인 이재현(55) CJ 회장에게 물려줬다.

이맹희 CJ 명예회장 별세 … 이르면 17일 서울로 운구

1987년 11월 부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장남 이맹희 CJ 명예회장, 2남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작고),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 [중앙포토]

60년대 후반 ‘사카린 밀수’와 관련한 투서 사건은 고인과 이병철 회장이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로 알려졌다. 66년 삼성계열 한국비료는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하다 적발됐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은퇴를 발표했다. 2년 뒤 사카린 밀수사건의 배후에 이병철 회장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청와대 투서사건이 터졌다. 이병철 회장은 고인을 의심했다. 상속재산 분쟁이 일던 2012년 이건희 회장이 “그 양반(이맹희)은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고발했던 양반이며,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라고 했던 건 이런 맥락이다. 고인은 93년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와 인터뷰 등에서 “당시 동생 창희가 투서를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투서한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인은 76년 이건희 회장이 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된 뒤 삼성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후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꾸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8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 해외에서 체류했다.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던 이맹희 회장은 2012년 2월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분할 청구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했다. 상고는 하지 않았다. 2014년 2월 상고를 포기하며 “소송을 이어가는 것보다 가족 간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은 이재현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 재계는 삼성과 CJ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은 2012년 일본에서 폐암 2기 진단을 받은 후 그해 12월 폐의 3분의 1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암이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전이돼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엔 베이징에서 비서들의 도움 아래 투병 생활을 해왔다.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은 CJ그룹장(葬)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이채욱 CJ㈜ 대표가 맡는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지는 서울대병원은 아들 이재현 CJ 회장이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투병 중인 곳이다. 이 회장은 현재 고지혈증과 손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병실에서 아버지의 별세소식을 들은 이재현 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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