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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기억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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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나치가 약탈한 유대인들의 미술품, 일명 ‘홀로코스트 아트’ 반환 소송을 소재로 한 영화 ‘우먼 인 골드’. 클림트의 명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기까지를 그린 실화 영화다. 훗날 1500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해 더욱 유명해진 그림이다. 주인공은 그림 속 여인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헬렌 미렌 분). 오스트리아 유대인 가문의 초상화였던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강탈됐고, 50년 후 80대 미국 노인이 된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와 8년 소송을 벌여 그림을 되찾는다. 유대인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의 손자지만 홀로코스트엔 관심 없고 오직 그림 가격에 혹했던 변호사 랜디도 점차 역사에 눈뜬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젊은 마리아가 미국으로 탈출하는 날의 기록이다. 이미 저택은 나치에 접수된 상황. 딸의 계획을 눈치챈 부모는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우리를 기억하렴.”

 개봉 중인 영화 ‘암살’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상해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음모와 추격을 그린 영화다. 한국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을 쫓던 킬러 영감(오달수 분)의 마지막 말이다. “어이, 우리 잊으면 안 돼. 알았지?” 마침내 일본이 패망하자 독립운동가 김구와 김원봉은 술잔을 기울이며 암살자들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잊혀지겠죠?” 김원봉(조승우 분)의 대사다.

 ‘명량’의 마지막 대사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명량대첩이 끝나고 환호하던 병사 중 누군가 하는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후손들은 알까?”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하나같이 ‘잊지 말라’는 장면을 등장시키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국제시장’도 그런 얘기였다. 잊지 말라는 ‘산업화 세대’의 당부다.

 어쩌면 선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후대에게 남겨진 첫 번째 일은 오래, 똑바로 기억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역사 자체가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해자의 기억을 기억하면 가해자의 기억이, 피해자의 기억을 기억하면 피해자의 기억이 역사가 된다. 승자의 기억과 기록이 공식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듯이 말이다. 어느 쪽이든 기억전쟁에서 살아남는 쪽이 역사가 된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고도 했다. 내일은 광복 70주년이다. EBS 다큐 제목이기도 했던 이 말이 종일 뇌리를 맴돈다. ‘기억을 기억하라.’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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