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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선율에 얹은 서양 현대무용 … 서로가 통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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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4일 영국 킹스턴 예술축제 협업무대에서 장구를 치고 있는 원일(왼쪽) 예술감독. [사진 킹스턴 축제]

원일(48·사진) 예술감독의 목소리는 다소 들떠있었다. “멜로디를 살짝 들려줬는데 인도 출신 여가수가 흥얼흥얼 노래를 입히니 그걸로 주제곡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국경·언어 장벽 없이 음악으로 통하는 기분이 행복했어요.”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열흘간 영국 런던 남부 킹스턴시에서 열린 ‘킹스턴, 한국을 환영하다(Kingston Welcomes Korea)’라는 예술축제에 참석했다. 한인 2만여 명이 거주하는 킹스턴시가 후원한 이 행사는 한국 전통 무용·음악과 코미디·현대미술 등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원 감독은 국악을 현대무용과 결합시킨 복합공연물을 영국 예술가들과 2주간 협업으로 완성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임기(3년)가 끝난 지난 3월, 계약 연장도 다른 곳의 러브콜도 마다했다. “가장 나답게,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차 제의가 왔다. 매튜 본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수석무용수 출신인 제이슨 파이퍼(현 킹스턴대 교수)와 요크 셰익스피어 예술축제를 이끄는 필립 파 감독과 협업 프로젝트였다.

 생면부지의 세 사람이 만나 음악·무용·연기를 결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줄기, 싹, 꽃, 씨앗(The Stem, the Bud, the Bloom, the Seed)’은 킹스턴 축제에서 초연돼 다국적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영 예술교류라는 축제 본질에 가장 가까웠던 성과”(전혜정 인터내셔널 프로그래머)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추가 협업을 통해 내년엔 국내 무대에도 선보일 계획이다.

 그가 이번 작업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그간의 갈증 때문이다. “각종 국악단을 이끌고 해외공연을 다녔지만 단발성에 그쳤어요. 서양인의 문화코드를 이해하고 네트워크를 쌓는 작업이 부족했던 거죠.”

 그들의 현장에 뛰어들어 우리 음악을 이해시키기로 했다. 워크숍 때 그가 “침묵이 모든 걸 만들어내는 근본”이라고 말하자 장내 침묵이 흘렀다. “교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동양적 순환의 개념을 담아서 식물이 싹 트고 자라고 열매 맺는 과정을 음악에 담았어요. 영국인 무용수들이 ‘영원히 머릿 속을 맴도는 선율’이라고 말하더군요.”

  그의 별명은 ‘국악계 이단아’다. 국악계의 매너리즘과 아카데미즘을 비판하면서 전자음악을 접목시킨 실험작을 쏟아냈다. ‘꽃잎’ ‘황진이’ 등으로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4차례 수상했다. 국악관현악단을 이끌면서도 소규모 창작공연을 독려하는 등 단원들을 강도 높게 다그쳤다. “나만의 음악·연주·태도를 쌓지 않으면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국악의 음향적 특징은 서양에 새롭고 매력적입니다. 장단(長短) 개념도 다르고요. 이 차이를 깊이 있게 차별화시킬 때 젊은 후배들이 해외에 진출할 길이 열린다고 봐요.”

 돌아와서도 쉴 틈이 없다. 올 10월 10회를 맞는 ‘화엄음악제’에 4년째 총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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