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사면 싸다고? 소비자들 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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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면 으레 탑승권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생수 한 병을 살 때조차도 탑승권 제시는 필수다.

대부분의 사람은 으레 “공항에서 면세품을 구입하는 것이므로, 탑승권을 보여주는 것은 해외에 나가는 것을 증빙해 세금을 면제받기 위한 하나의 절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추측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공항 내 매장 가격 논란’은 인디펜던트지의 8일(현지시간) 단독보도에서 시작됐다.

영국의 모든 공항내 매장에서도 모든 물건을 살 때마다 비행기 탑승권을 요구하는데, 인디펜던트 취재 결과 이 상점들은 고객들의 탑승권을 이용해 자신들이 내야하는 부가가치세(VAT)를 면제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가가치세를 뺀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하는 면세 혜택을 상점들이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

<감쪽같이 숨긴 세금 우대 혜택, 어떻게 가능했나>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국가 내 공항에서 구입한 다음, EU 밖으로 들고나가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즉 소매 상인은 손님들의 탑승권을 스캔함으로써 부가가치세를 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매 상인들이 소비자들에게 면세 가격으로 팔아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다. 즉 면세로 인한 혜택이 반드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니베아 선스프레이 제품을 예로 들었다. 런던 시내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에서 8파운드였는데, 공항 내 매장에서도 마찬가지로 8파운드였던 것이다.

업체들은 변명하고 있다. 영국 내 공항에 가장 많이 입점해있는 화장품 판매점 ‘부츠’는 논란에 대해 “런던 매장과 공항 매장의 가격이 같은 것은 사실”이라며 “회사에서 내야하는 부가가치세를 정확하게 산출하기 위해 탑승권 제시를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면세로 인한 할인 혜택은 반드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소비자 전문가 폴 루이스는 인디펜던트에 “소매상들이 소비자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우롱하고 있다”며 “문제는 소비자들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소매상들에게 가할 수 있는 법적 규제가 딱히 없는 게 현실이라고 신문은 지적한다. “탑승권은 탑승권대로 스캔하고, 면세 혜택은 가게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 히드로 공항 내에 5개 매장이 입점해 있는 해롯 백화점의 경우 모든 물건을 부가가치세를 빼고 판매하는, 정직한 곳이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소비자들의 반발>

시민들은 ‘소비자들의 돈을 채간 소매상’들에게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도가 나간 이후로 소비자들은 공항 내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며 탑승권을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있다.

영국 미러지가 1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항 내 가게들은 세금 우대 혜택을 소비자들에게 줘야 한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92%를 차지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은 응답자 중 8%에 불과했다. 소비자 단체들도 소비자들을 우롱한 이들 상점들에게 부가가치세를 돌려받기 위한 법적 소송을 예고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사진설명
사진1 (더부츠) 영국 버밍햄 공항 내에 위치한 화장품 판매점 ‘더부츠’
사진2 (월드듀티프리)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 내에 위치한 ‘월드듀티프리’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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