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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찾아낸 20세기 벽화의 거장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벽화는 다른 미술에 비해 조금 더 ‘상’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술이다. 여기서 ‘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 형태를 말한다. 실제로 추상화로 이뤄진 벽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벽화는 스페인에 있다. 알타미라 동굴(cueva de Altamira)은 세계유산으로서 문자 그대로 옮기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High View)라는 뜻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 걸작을 8살의 딸과 함께 발견한 마르셀리노 사즈 데 사우투올라는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했으며, 사망할 때까지 그의 업적 역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벽화에 등장하는 말, 돼지, 사슴들의 ‘상’ 이 너무도 정교하고 ‘현대적’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석기시대의 벽화에 그려진 사슴은 마법을 위한 도구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신령들(Geister)에게 바쳐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벽화에 그려진 상에는 작가의 의도가 ‘상’으로 드러나며, 신령들에게 바치기 위한 대부분의 벽화는 ‘지금’을 그리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의식이 예술이 지금 현재보다는 더 아름다운 것,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믿음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자신이 살아가는 ‘지금’의 치열함을 그려낸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세기 멕시코 벽화운동의 예술 운동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을 전시하는 ‘디에고 리베라: 프라이드 오브 멕시코’ 전시다.

디에고 리베라는 20세기를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예술활동을 했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가르쳤고 평생을 두고 사랑했지만 죽고 나서야 유명해진 또 한 명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명성에 ‘눌렸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들에는 볼 거리가 많다. 그가 다른 어떤 작가들과도 달리 그 당시의 ‘지금’을 ‘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그의 1934년 작품 ‘십자로의 남자’를 들 수 있다. 이는 실제로 그 당시에 엄청난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그 이유는 이 벽화가 미국에 그려지게 된 시대적 배경과 벽화에 그려진 ‘상’의 모습들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의 사회분위기 수습을 위한 뉴딜 정책을 펴고, 그 일환으로 미술운동을 전개한다. 미국 정부는 국민 계몽 기능으로서의 멕시코 벽화운동에 주목하고, 미술운동의 일환으로 디에고 리베라를 미국으로 초청한다. 그러나 이어진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든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로 돌아가 이 벽화를 대통령궁에 재현한다.

1947년에 그린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에서는 서민의 공간인 공원에 멕시코 역사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그려놓고 있다. 멕시코 역사를 알면서 보자면 이만큼 재미있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멕시코 역사 교과서에 나올 만한 사람들을 모두 그려놓았다.

멕시코 역사에 악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불길이 솟아오르는 왼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전통 복장을 한 어린아이에게 소매치기를 당하며 새로운 멕시코의 깃발 뒤로 쫓겨 난다. 멕시코의 현재를 상징하는 농민들과 ‘지금’ 멕시코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직 한 가운데에는 죽음의 상징인 ‘카탈리나’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죽음과 손잡고 있는 사람이 어린 디에고 리베라이고, 그 뒤에 어머니처럼 서 있는 사람이 프리다 칼로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그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멕시코 사람들의 90% 이상이 문맹인 시절이었으니,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다면 그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편 ‘디에고 리베라: 프라이드 오브 멕시코’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오는 16일까지 계속된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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