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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당제와 다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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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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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안타깝다. 공과(功過)는 차치하고라도 94세의 나이에 아들과 다투다 뒷방으로 밀려나는 꼴이니 말이다. 언제까지 자기 손에 움켜쥐고 있을 줄 알았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세월을 본다. 그런데도 자기만은 늘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고 착각한다.

 어디 기업뿐이겠는가. 정치판은 더 가관이다. 정치권을 취재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아는 정치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정치인이 오래 자리를 지킨다고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할 일이 많다면, 또 그 자리에서 국민에게 큰 보답을 안겨준다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대개는 자신의 권력 유지가 목표다. 심지어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직업이 돼버린 경우도 흔히 본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다. ‘한 시대의 새 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한다’고도 한다. 시대가 흐른다고 과거와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지만 시대마다 소명이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몫이다. 광복 70년 동안 무수히 많은 피땀을 흘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근대화 세대’ ‘민주화 세대’ ‘86세대’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기여가 아무리 커도 그 추억이 미래를 만들지는 못한다.

 물론 무조건 물러나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경험을 살려 새 시대를 열어나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새 역사를 써가는 노력이다. 과거의 훈장을 팔아 패거리를 짓고, 퇴행적 공론(空論)만 벌인다면 뒷물결에 자리를 내주는 게 순리다.

 역대 선거에서 국회의원의 물갈이 비율은 낮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 초선인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지역구만 봐도 현역 의원의 당선 비율은 절반에 불과하다. 신군부가 등장해 정치규제로 묶였던 11대 총선 때는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 당선율이 7.6%에 불과했다. 1구2인제에서 1구1인 소선거구제로 바뀐 13대에는 29.5%,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로 ‘탄돌이’를 양산한 17대에는 36.2%였다. 이건 예외로 치더라도 다른 선거에서 역시 현역 의원 비율은 40~54%다. 현재 국회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초선 의원이 절반을 살짝 넘긴 151명이다.

 이렇게 많이 바꾸고도 왜 불만일까. 국민은 계속 변화와 혁신을 요구할까. 구정치의 대명사가 돼버린 양김씨만 해도 대통령선거를 겨냥했다.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가 있으면 어떻게든 끌어들였다. 의정활동을 경쟁적으로 독려하며 공천에 반영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개발해 제시했다.

 그러나 그 시대가 저물어 ‘작은 감자’들의 싸움이 되면서 물갈이 양상이 달라졌다. 계파별로 자기 세력을 심는 것이 목표가 돼버린 것이다. 국가적 목표는 흐려지고, 야당 즐기기가 스며들었다. 과거의 영광을 우려먹는다. 깃발이 아직도 ‘김대중’ ‘노무현’이다. 새누리당도 ‘친이’ ‘친박’ 세력 심기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

 호남의 보수세력, 영남의 진보세력…. 많은 유권자가 자기 대표를 뽑을 기회를 사실상 제한받았다. 지역주의 정당의 뻔뻔한 ‘말뚝 공천’에 넌더리를 냈다. 그래도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유권자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표의 등가성(等價性)’에도 가장 부합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조금 변형해 제안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다소 부정적이다. 그러면서도 ‘논의해보자’고 받아들였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새누리당 의석이 줄어들게 된다. 19대 총선 결과를 적용하면 152석이 10석 정도 줄어든다. 그러니 고개를 젓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당장 의석 몇 자리만 아까워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완화해 국민 통합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1구2인제 시절의 득표를 고려해도 지금과는 득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김대중 시대의 결집력이 호남에서만 계속된다고 보는 것은 패배주의다. 이미 야당에서 분당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수 정파에 기회가 생기면 가속화될 것이다.

 가장 최근 다당제를 경험한 것은 13대 여소야대의 4당 체제다. 1당이 독점하던 국회 상임위원장과 부의장을 야당에 할애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하지만 그때는 소선거구제가 지역주의 바람을 일으킨 결과다. 그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제1당의 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오히려 커진다. 현재 체제에서는 강경파가 제1야당 전체를 흔든다. 야권연대에 매달려 휘둘렸다. 이런 현상은 완화될 수 있다. 양당제를 전제로 도입한 국회의 ‘합의제 운영 방식’도 유지할 명분이 없어진다. 국회법도 함께 고친다면 제1당에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