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문화

종교와 과학, 충돌은 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근 가톨릭계에서 인간배아 연구 허용이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종교와 과학 간의 충돌'로 보지만 이러한 시각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갈릴레오 사건 이후 빚어진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일 수 있다. 과학과 종교는 인간의 '삶과 문화'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두 축이다. 그러므로 대립보다는 상호협력을 통해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특히 난치병 치료 등 인류에게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과학과 종교는 자기 입장에만 머물지 말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 모색에 앞장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헌법소원은 시의적절하나 종교적 이유를 들어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난자의 수정 시점을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가톨릭 교리의 입장에서 볼 때, 배아는 이미 존엄한 인간생명이므로 어떤 이유에서든 실험연구 대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인간의 배아는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니고, 잠재적 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낙태의 경우처럼 배아 연구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수정은 한순간에 성사되는 사건이 아니라 약 2주간에 걸친 복잡한 과정이다. 수정시 생성되는 유전자적 유일성을 인간 존엄성의 근거로 보는 가톨릭의 입장에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일란성 쌍둥이의 개체적 인격을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연구에 정진할 뿐"이라고 답한 황우석 교수의 방관적 태도도 부적절하다. 인간 생명을 다루는 과학자는 생명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투명하게 입증할 책임이 있다. 황 교수는 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제임스 왓슨,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윌머트, 줄기세포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제론사의 토머스 오카르마 등이 자신의 연구가 초래할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사전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정부.교회.회사 차원의 생명윤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신학자.종교인.윤리학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자신의 연구가 가진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를 공개적으로 규명하고, 스스로 연구 범위와 한계를 조정해 왔다. 특히 황 교수는 국가가 인정한 최고 과학자이자 자라나는 세대들의 우상이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사회적 합의에 성실히 임하는 과학자로서의 사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제기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 과학과 종교가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투명한 토론문화와 시스템 정착이 시급하다. 이번 헌법소원이 그러한 것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종교와 과학은 교리적 집착과 과장된 수사학을 넘어 구체적 사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에 임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마이크로적 논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그 연구가 가지는 매크로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치료용 배아 연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허용범위 설정과 함께 법적.사회적 차원의 철저한 관리 또한 시급하다. 아울러 이종 간 교잡 허용 등 현재 생명윤리법이 갖고 있는 독소 조항들의 개정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생명윤리법에 의해 새로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윤리위원들은 기계적 거수기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진정한 파수꾼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공정하고 지혜로운 판결을 기대한다.

김흡영 강남대 교수.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