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축구 아버지와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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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경기가 있었던 지난해 6월 14일 인천월드컵경기장. 그날 그곳에서 펼쳐진 박지성(22.PSV아인트호벤)선수의 '쉿 세리머니'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가슴으로 공을 받아 오른발로 한번 튀겨 수비를 제친 뒤 튀어오르듯 솟아올라 강하게 찬 그의 왼발 슛은 아직도 풍경화처럼 선연하다. 그때부터 朴선수는 영웅이 됐다.

그런데 그 영웅 뒤에는 숨은 은인이 있었다. 바로 '축구전도사'로 알려진 김용서(金容西.62) 수원시장. 金시장은 수원시 축구협회장이었던 1990년 박선수를 처음 만났다. 당시 황소처럼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순박한 소년에게 金시장은 단번에 매료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金시장이 朴선수의 장래를 확신한 것은 엉뚱하게도 번지점프장에서였다고 한다. 朴선수가 수원공고에 재학 중이던 97년 金시장은 이 학교 선수들을 데리고 친선경기차 호주를 방문했다.

경기가 없던 날 金시장 일행은 우연히 한 번지점프장을 지나갔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번지점프장'이란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金시장은 차를 세운 뒤 "한번 뛰어볼 선수 있나"하며 둘러봤다.

아무도 선뜻 나서려하지 않았다. 그때 朴선수가 나섰다. 金시장은 억지로 다른 선수를 지목해 朴선수와 함께 번지점프를 뛰게 했다.

점프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金시장은 두 선수에게 소감을 물었다. '동원된' 선수는 "번지점프장 쪽은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朴선수는 "한번 더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든든한 담력이 오늘의 지성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축구는 결국 마음을 가지고 하는 운동이니까요."

金시장이 축구계에서 이룬 업적은 비단 朴선수의 성공뿐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시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13년간 수원시 축구협회장으로 뛰면서 초.중.고 축구팀 8개를 만들어냈다. 37년간 농기계를 제작해 벌어들인 돈이 고스란히 기숙사와 합숙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해 4월 20일 브라질 상파울로 클럽과 자매결연을 맺고 코치 2명을 초빙해 경수(京水)상파울로유소년축구클럽을 탄생시켰다.

"내년에는 고등부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원은 전(全)단계의 클럽팀을 갖춘 국내 최초의 도시가 됩니다"라고 말하는 金시장의 목소리엔 신바람이 가득했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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