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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성공, 행정부 주도와 국민 소통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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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정부와 여당이 함께 노동 개혁에 전력투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으나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2%대의 저성장세와 저조한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소위 ‘청년 고용절벽’ 해소에 나서게 되었고, 노동 개혁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지 않는 저성장 여건하에서도 신규 임용과 해고의 유연성 확보, 연공서열 타파,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어느 정도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정규직 과보호 문제 등 좀 더 광범위한 노동 개혁으로 국내외 기업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청장년 할 것 없이 모든 근로자를 위한 추가 일자리 창출이 더욱 중요하다.

 금번 정부·여당이 추진할 노동 개혁은 경제성장이 한계에 달했을 때의 ‘일자리 나누기’ 혹은 ‘일자리 쪼개기’를 통한 기존 일자리 재분배보다 경제성장에 따른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것은 현재 크게 떨어져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그럼 이 중요한 금번 노동 개혁의 성공 요건은 무엇인가.

 첫째로 개혁의 주체가 행정부가 돼야 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노동 개혁 경험은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때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까지 불리던 독일 경제를 오늘의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은 2003년의 하르츠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경험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조합의 지지가 중요한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이 노조의 지지를 잃을지 모르는 노동시장 개혁을 그것도 2005년의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어떻게 추진하게 됐느냐고 필자가 얼마 전 어느 사석에서 물었다.

 그는 당시 독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고 실업률도 높아 집권당인 사민당의 인기가 아주 낮았기 때문에 어떤 획기적인 조치가 없는 한 사민당이 선거에서 거의 확실하게 패배할 것으로 봤다. 그래서 사민당 내의 일부 반발과 노조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힘든 노동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범국민적 지지를 기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2005년 선거는 놀랍게도 사민당이 1%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선거가 일주일 정도만 늦게 치러졌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슈뢰더 전 총리는 농반진반 조의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어쨌든 2003년 독일의 노동 개혁은 집권 사민당의 지원하에 슈뢰더 전 총리가 이끈 행정부 주도로 성공했다. 절충과 타협, 그리고 사회적 협약이 중시되고 이러한 민주주의 전통이 정착돼 있는 독일에서마저 이해상충이 첨예한 노동 개혁을 노사정 협의체에 의존할 수 없어 정부가 나서게 된 것이다.

 우리의 현 정치 여건이나 노동조합의 현황을 고려할 때 2003년 독일에 비해 노동 개혁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번 노동 개혁의 성공을 위한 정부·여당의 결연한 용기와 의지가 필수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행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을 주도하고, 여당은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하는 등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는 노사정위원회에 다시 매달리거나 현재 일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타협기구가 주도하는 노동 개혁의 성공은 기대하기 힘들다. 설사 정치권이 주도해 일종의 타협안에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는 진정한 개혁의 핵심을 비켜간 채 임시변통적인 것이 될 게 뻔하다.

 그럼 정부 주도의 노동 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모든 국무위원, 그리고 관련 장·차관과 실무책임자 모두가 직접 나서야 한다. 모든 언론매체를 통한 간담회, 사계 전문가들과의 토론, 노조 및 일반 근로자들과의 대화, 수시 기자회견, 언론과의 인터뷰, 언론 기고, 강연 등 국민과의 다양한 직간접 소통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 소통을 통한 범국민적 지지 없이는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을 극복할 수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거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의 심화된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나 지역에 비해 불리한 노동시장 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일자리가 우리나라를 떠나게 된다는 것을 많은 국내외 사례를 통해 국민들께 잘 알려야 한다. 그리고 노조원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들에게 경제성장 없이 진정한 일자리 창출과 궁극적인 근로자 복지 향상은 불가능함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