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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음악 실어증에 걸린 라벨의 ‘비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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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27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년 전인 1915년. 이 해에 음악계에서 일어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 일을 꼽겠다. 바로 모리스 라벨의 입대. 이 유명 작곡가는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공식화된 이전 해(1914)에 이미 공군에 지원했던 터였다.

프론티스피스

 다행히도(!) 고령과 심장 질환이 문제가 되어 탈락이 되었건만 결국엔 부상자를 실어나르는 임시 구급차의 운전수로 기어코 참전하고 만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40세. 1차 대전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르댕 전투(1916)에도 배치되었던 라벨은 얼마 후 부상으로 일시 제대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에는 그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남긴 곡이 하나 있다. 바로 ‘프론티스피스(frontispice, 책의 ‘표지’, 혹은 건물의 ‘정면’을 뜻하는 단어)’.

1916년 군복차림의 모리스 라벨(1875~1937). 라벨은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위키피디어

 어찌보면 참전 전에 이미 구상에 착수해 1917년 완성시킨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과 한 쌍이라 할 수 있는 곡이다. 그러면서도 두 곡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완전히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우리 프랑스인의 기상과 문화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곡’이라고 알프레드 코르토가 극찬한 이래 지금까지도 라벨이 남긴 최고의 피아노곡으로 칭송받는 ‘쿠프랭의 무덤’에 비하면 이 ‘프론티스피스’는 영 알려지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이 곡은 차마 연주할 수가 없는 곡이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워서냐고? 아니다. 너무 길어서냐고? 전혀 아니다. 그럼 특이한 악기가 필요하냐고? 그것도 여러 대? 그렇지 않다. 딱 피아노 한 대면 된다. 그렇다면 왜 연주를 할 수 없냐고?

 그건 들어보면 안다. 음반도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내가 찾은 거의 유일한 음반은 알폰스 콘타르스키, 알로이스 콘타르스키 형제 듀오의 ‘라벨 작품 전집’이다. 그들이 이 곡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단 라벨의 전 작품을 녹음해야 하는 음반이니 어쩔 수 없이 수록해야 했던 까닭이 아니면 과연 이곡을 녹음했을까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도대체 곡이 어떻기에 그러냐고? 일단 들어보자.

 누군가가 웅얼대는 듯한 반주같은 음형으로 시작하는 곡. 이윽고 주술을 읊어대는 것 같은 성부가 하나 추가된다. 곧 이어 또 하나의 성부가 더해진다. 이 성부는 마치 다른 두 성부에 딴지를 거는 듯, 종소리 같기도, 목탁소리 같기도, 코맹맹이 목소리 같기도 한 소리로 똑같은 음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 이내 먼저 추가된 성부와 흡사하게 주술을 읊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시 후 낮은 소리의 성부가 하나 더해진다. “똑똑똑, 똑똑똑.” 마치 노크 같기도 혹은 발자국 소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는 아주 높은 소리의 한 성부가 더해지는데 이것은, 음… 뭔지 모르겠다. 물방울이 튀는 소리 같기도 혹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총성 같기도 사람의 비명 소리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다섯 개의 소리가 모두 한데 모여 서로를 아랑곳않고 각자 자기 말만 하듯 떠들어대는 것이 잠깐. 그 모든 소리가 멈추고 뚱딴지같이 4성부의 코랄 같은 화성들이 등장한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이 화성들은 아주 천천히 점점 커지다 말고는 갑자기 속삭이는 듯한 작은 소리의 음 두 개로 연결되는데, 그러고는? 끝이다. 연주 시간은 총 2분 남짓, 아무리 길어도 3분이 채 되지 않는다. 자못 충격적인 곡이다.

 이전에 ‘물의 유희’에서 보여준 넘치는 영감도, ‘소나티나’에서 보여준 고결함도, ‘밤의 가스파르’에서 보여준 정교함도,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에서 보여준 재치도, 그 어떤 것도 간데 없다. 그렇다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보여주는 비애도 아니요 ‘거울’의 두번째 곡 ‘슬픈 새’에서 보여주는 고독도 아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을 정도다. 의도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에릭 사티라면 모를까, 이게 라벨의 작품이라고?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겠다는 패기로 자진 입대한 라벨. 절친했던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나이와 명성이었으면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을 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거나….”하며 존경심과 우려를 표했다. 그의 우려는 매우 적중했다. 전쟁터에서 곧 불면증과 섭식장애를 앓기 시작했고 아메바성 이질로 수술까지 하게 된 라벨. 전장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와중에 어머니마저 드러누웠다. 결국 동상으로 제대해 파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참 동안은 잘 수도 먹을 수도 일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마침내 돌아가셨을 때는 산 송장 상태가 되어버렸다.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이 광풍이 지나고 그가 남긴 흔적이 바로 이 곡 ‘프론티스피스’다. 작곡가의 스타일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다 그 어떤 사조에도 포함되지 않고 이렇다 할 컨셉트도 없는 이 곡은 어쩌면 음악적 가치가 전무한 곡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어도 결코 전달할 수 없는 광경들, 두 귀로 생생하게 들었으나 잊고 싶기만 한 소리들, 죽음의 감촉, 그 피비린내 나는 모두가 더해져 결국엔 음악적 실어증에 걸리고 만 그가, 말다운 말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뱉어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저 꺽꺽거리는 것과 같이 써내려간 이 곡은 전쟁의 참상과 그의 말년을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료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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