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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고서 통제 강화하라”… 경솔한 금감원 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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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승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승호
경제부문 기자

“그럼 보고서를 내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

 지난 23일 오후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투덜거렸다.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내 주요 리서치센터장과 금투협의 정기 협의체 회의에 다녀온 뒤였다. 회의는 ‘매도 의견’이 담긴 투자 보고서를 활성화할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이 센터장이 거슬린 건 옵서버(참관인)로 참석한 금융감독원 A국장의 발언이었다. A국장은 “민감한 시기엔 업체 사정도 살펴야 한다”며 “보고서를 작성할 땐 증권사도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든 사례가 지난달 말 토러스증권 연구원이 서울시내 면세점 후보 중 현대백화점을 꼴찌로 평가한 보고서였다. 당시 현대백화점 고위 관계자가 연구원에게 “보고서를 내리라”고 말해 ‘갑질’ 논란이 일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리서치센터장들 일부는 A국장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A국장은 기자에게 “내부통제는 보고서 근거 자료가 합리적이고 정확한지 살피고 발표 시점도 숙고해 보란 의미였다”며 “업체 사정을 살피란 말은 안 했다. 일부 센터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는 자기 이름, 증권사는 회사 상표를 걸고 보고서를 낸다”며 “당연히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갖고 검증 절차를 거쳐 보고서를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 시점을 숙고하란 건 보고서를 내지 말란 건데 투자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애널리스트의 본분을 저버리란 말인가”라고 항변했다.

 매수 의견 일색인 증권사 보고서의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1~2014년 분석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전체의 0.1%도 안 된다. 1차적으론 증권사 책임이다. 자료가 틀렸거나 시장 상황이 변하면 과감히 의견을 수정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증권사가 매도 의견 보고서를 꺼리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기업의 비위를 거스르기 쉽지 않아서다. 기업에 불리한 보고서를 쓰면 출입 정지를 당하고 자료도 쉽게 얻을 수 없다. 해당 종목을 산 투자자의 회유와 협박도 부담이다. 금융 당국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23일 회의도 이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금감원이 마련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온 ‘내부통제’ 언급은 그 발언의 취지를 떠나 금감원의 자본시장 개혁 의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 금감원은 일개 기업이 아니다. 자본시장 전체를 감시하는 컨트롤타워다. 증권사로선 기업 최고경영자(CEO)보다 금감원 간부의 말이 더 큰 위력을 가진다. ‘내부통제 강화’란 말이 증권사에 ‘매도 보고서 작성 시 자체 검열을 강화하라’는 주문으로 들리지 않도록 금융 당국은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

이승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