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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77> SNS ‘해시태그’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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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영민 기자

인터넷에 더 이상 텍스트(글)가 필요없는 시대, 곧 올지 모릅니다. 바로 ‘샵(#)’, 한자로는 ‘우물 정(井)’의 존재 때문이지요. 언어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대신 사진·동영상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해시태그(hashtag)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연아’로 검색을 할 경우, 단순히 텍스트뿐만 아니라 김연아의 경기 영상과 사진을 모두 찾을 수 있답니다.

지난 19일 걸그룹 ‘소녀시대’의 메인 보컬 태연이 SNS에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 올렸습니다. 사진엔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표정에 ‘#김기복’이라는 태그가 걸려있을 뿐입니다. 평소 무대와 달리 안무 순서를 건너뛰는 등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셈입니다. 사진 한 장과 # 뒤에 있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 가능했습니다.

인스타그램·텀블러·폴라 등 속속 활용

해시태그는 ‘#특정단어’ 형식으로 그 주제와 연관된 정보를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묶어 주는 기능을 한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에서 20~30대 여성 중심으로 맛집 찾기, 패션 등 자신의 일상을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 형태로 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해시태그는 ‘#특정단어’ 형식으로 그 주제와 연관된 정보를 묶어 주는 기능을 합니다. 미국에선 #를 샵 대신 ‘해시’라고 읽으며 숫자를 가리키는 기호로 쓰입니다. 해시태그가 정보를 묶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쓰인 곳은 마이크로블로그 형태의 SNS ‘트위터’였습니다. 본고장은 역시 모든 정보기술(IT) 혁명의 발상지인 미국입니다. 트위터는 2000년대 후반 140자 이내의 간결한 문체로 인기를 끌면서 이용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요. 하지만 수많은 정보들이 휘발성 메시지에 묻혀 사라지거나 상호 연결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중에 2007년 8월 오픈소스 운동가인 미국인 크리스 메시나가 트위터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를 써서 정보를 묶는 걸 어떻게 생각해? #[메시지]라는 식으로 말이야.” 해시태그가 탄생한 순간이지요. 해시(hash) 기호를 써서 게시물을 ‘묶는다(tag)’고 해서 해시태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페이스북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인스타그램·구글플러스·텀블러(Tumblr)·플리커(Flickr)·유튜브 등에서도 해시태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시태그의 활용도가 가장 극대화된 곳은 사진 위주의 SNS ‘인스타그램’입니다. 자아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20~30대 여성층에서 자신의 일상을 사진 형태로 올리기 시작했지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패션이나 스타일을 자랑할 때는 ‘#멋스타그램’ 혹은 ‘#옷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를 붙이면 됩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아이돌그룹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7)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팔로어(3800만 명)을 보유하고 있지요. ‘#먹스타그램(음식 주제)’ ‘#맛스타그램(맛집 주제)’ ‘#멍스타그램(애견 주제)’ ‘#셀스타그램(셀카 주제)’ ‘#인스타굿(좋은 기분)’ 등 신조어가 해시태그 형태로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긴 말보다도 잘 찍은 사진 한 장의 전달력이 훨씬 더 크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해시태그는 네티즌들의 놀이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착용한 의상’이라는 뜻의 ‘#OOTD(Outfit of the day)’란 해시태그로 네티즌들이 서로 패션 감각을 경쟁하는 방식이지요. ‘#2002년에_다들_뭐하셨나요’같이 문장 형식의 해시태그를 통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사진·추억 등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은 김연아가 은퇴했을 당시 ‘#고마워연아야’라며 응원을 보냈고, 올 상반기 과자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얻게 된 원동력도 ‘#허니버터칩’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서 맛과 모양, 각종 패러디가 퍼졌기 때문이지요.

네티즌에겐 놀이, 기업은 마케팅 수단

네이버가 지난 4월 출시한 사진·동영상 기반의 SNS ‘폴라’의 메인 화면. 출시 2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가 100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사진 네이버]

 사실 국내에서 해시태그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곳은 바로 기업입니다. ‘#galaxy(갤럭시)’ ‘#두산베어스’ 같이 기업이나 브랜드명으로 마케팅에 활용되는 해시태그가 등장했지요. 국내 기업들이 해시태그 마케팅을 벤치마킹한 해외 사례는 바로 스웨덴의 가구전문점 이케아입니다. 고객에게 우편으로 배달되는 제품 카탈로그의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자 이케아는 해시태그를 통한 프로모션을 시작했습니다. 카탈로그 속 제품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업로드하면 해당 가구를 경품으로 주기로 했습니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가구의 사진을 찍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렸고 우편을 받지 않은 소비자마저 카탈로그를 찾아 이케아 가구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습니다. ‘#IKEA’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말이지요. 결국 4주 만에 카탈로그 안에 있는 모든 제품이 SNS에 포스팅되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해시태그가 유행이 되니 글로벌 미디어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 2월 뉴욕타임스(NYT)는 기존 음식·여행·패션뿐만 아니라 비디오팀, 스포츠데스크, 이벤트팀 등에서도 별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담당 기자가 최근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쿠바를 다녀오면 ‘#Cuba’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이나 15초 분량의 동영상을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또 NYT는 지난 2012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본지 1면에 올려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사진기자가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아닌 아이폰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도 신문 1면용으로 손색이 없다고 널리 인식시킨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다음카카오와 네이버도 해시태그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다음카카오는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카톡)’에 해시태그 검색을 결합시켰습니다. 친구와 메신저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입력창에 있는 ‘#’을 눌러 검색을 하라는 뜻이지요. 네이버의 검색 서비스 장악력을 떨어뜨리겠다는 계산이 숨어있는 서비스입니다. 네이버도 지난 4월 내놓은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폴라’라는 사진형 SNS를 출시했습니다. 폴라는 해시태그와 사진을 최일선에 배치한 관심사 중심 SNS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사진(photo)과 인기(popular)를 합친 폴라(Pholar)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시태그가 마냥 마케팅 수단으로만 쓰이는 건 아닙니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는 구심점으로도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멕시코 여배우 셀마 헤이엑은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BringBackOurGirls’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등장했습니다.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납치한 나이지리아인 여학생 270명을 돌려보내 달라는 뜻이지요. ‘#BringBackOurGirls’ 해시태그는 트위터를 통해 널리 퍼졌고,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도 이 운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해시태그는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선 그리스 재정위기도 해시태그의 소재가 됐습니다. 긴축과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독일 주도의 그리스 구제금융협상이 타결되자 트위터에서는 독일 제품 불매 운동을 뜻하는 ‘#보이콧독일(Boycott Germany)’이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됐습니다. 이 해시태그는 좌파 정치인, 무정부주의자, 언론인 등이 잇따라 쓰면서 총 사용횟수가 3만 건 이상으로 집계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런던정경대(LSE) 인류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트위터에 “독일은 이제 1953년 탕감된 나치 정권의 빚을 갚을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그때까지 우리는 #보이콧독일 해야 한다”고 올렸습니다. 이에 독일 사람들도 가만 있지 않았는데요. 독일 언론인 토마스 발데는 “그리스인들이 요구하는 #보이콧독일에는 독일의 구제 금융도 포함되나? 아니지? 그럼 됐어”라고 반박하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의미 덩어리로 인식, 띄어쓰면 안 돼

 그리스 구제금융뿐만 아니라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의 ‘북극 보호 캠페인’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OnTop’ 또는 ‘#SaveTheArctic’이라는 해시태그를 SNS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동성애 합헌 판결이 나오자 지지자들이 ‘#lovewins’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전직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이 내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다고 하자 SNS에서는 해시태그로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대표적으로 ‘#내가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Why_I’m_not_voting_for_Hillary)’가 인기 해시태그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도 건국대 영화학과 통합을 반대하는 네티즌들은 SNS에 ‘#SaveKuFilm’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아, 기사를 읽고 직접 해시태그를 써 보신다고요? 참고로 문장으로 해시태그를 사용하려면 띄어쓰기를 해선 안 됩니다. ‘#2002년에 다들 뭐하셨나요’는 해시태그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띄어쓰기를 하는 순간 ‘2002년에’ ‘다들’ ‘뭐하셨나요’가 인터넷에서 각기 다른 의미 덩어리로 인식되기 때문이지요. 정 띄어쓰기를 하고 싶다면 ‘#2002년에_다들_뭐하셨나요’ 같이 중간중간에 ‘_’ 기호를 삽입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다음과 같이 단어 하나하나에 해시태그를 붙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여자친구와 #바다에 놀러가서 #조개구이를 먹었다” 같이 중간중간 특정단어 앞에 #을 넣어야 하지요. 아마 해시태그를 처음 만든 크리스 메시나도 한국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이렇게 사용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늘은_예쁜데_내_기분은_별로’ 같이 해시태그가 감정까지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고 TV 자막에까지 등장하는 문화 현상이 됐으니까요.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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