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76> 현대 중국의 9대 정치사조

중앙일보

입력 2015.07.20 00:02

업데이트 2015.07.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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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1990년대 중국 권력 서열 3위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경쟁자였던 차오스(喬石)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달 14일 세상을 떠났다. 차오스의 죽음은 89년 6·4 천안문사태 이후 등장한 중국 3세대 지도부 평가의 도화선이 됐다. 이는 중국이 개혁에 성공한 경제와 달리 정치 개혁에 실패한 이유를 찾는 작업이다. 현대 중국에서 경합 중인 9대 정치사조를 소개한다.

1. 자유주의

허웨이팡 베이징대 교수

현대 정치학에서 자유주의는 입헌(立憲) 자유주의를 말한다. 시민의 권리를 신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권력을 제한하고 감독할 것을 요구한다. 정치·경제·사회 영역 모두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 현대 중국 자유주의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 세기 넘도록 중국이 겪었던 굴곡 많은 역사와 참담했던 기억이 기저에 깔려있다. 천안문사태는 중국 자유주의 지식인이 당국체제(黨國體制·공산당이 국가에 우선하는 중국 특유의 정치체제)라는 독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자유주의의 반(反)독재 주장 역시 업그레이드됐다. 입헌민주의 실현은 많은 자유주의 지식인이 스스로 깨달은 선택이자 명확한 목표가 됐다.

최근 20년간 중국 자유주의는 세 그룹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진화했다. ▶자유지식인의 지적 계몽 ▶자유지식인과 시민운동의 결합 ▶일부 자유지식인의 공개적인 반(反)정부파로의 변신이다.

대표 인물로는 허웨이팡(賀衛方·55) 베이징대 법대교수, 친후이(秦暉·62) 칭화대 인문학원 교수, 쉬유위(徐友漁·68)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원로 경제학자 마오위스(茅于軾·86), 우쓰(吳思·58) 전 염황춘추 편집인, 장리판(章立凡·65) 정치평론가, 양지성(楊繼繩·55) 염황춘추 편집인, 쑨리핑(孫立平·60) 칭화대 사회학과 교수, 루웨강(盧躍剛·57) 중국청년보 해직기자, 추이웨이핑(崔衛平·59) 베이징영화학원교수 등이 있다.

2. 마오좌파(毛左派)

간양 중산대 인문고등연구원 원장

마오좌파는 마오쩌둥(毛澤東)이 만년에 내세운 주장을 따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중국이 직면한 문제를 사회적 역량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안문사태 후 20여년 동안 중국에서는 권귀(權貴·권력과 자본을 장악한 세력) 자본이 빠르게 발전했다.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 사회적 불만이 갈수록 팽배해졌다. 모두 마오좌파의 주장이 중·노년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는 배경이 됐다. 천안문사태 후 중국공산당은 민간의 문화대혁명 논의를 금지시켰다. 문혁이 남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했다. “문혁으로 돌아가자”는 마오좌파의 주장이 아직도 인기를 얻고 있는 원인이다. 마오좌파는 통상 반(反)서구파, 반(反)보편가치파와 동일시된다. 대중을 현혹하는 포퓰리즘과도 일맥 상통한다. 대표 인물로는 간양(甘陽·63) 중산(中山)대 인문고등연구원 원장, 류샤오펑(劉小楓·59) 인민대 문학원 교수, 장훙량(張宏良·60) 중앙민족대교수, 쓰마난(司馬南·59) 정치평론가, 한더창(韓德?·48) 베이징항공우주대 경제관리학원 교수, 궁칭둥(孔慶東·51)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 등이 있다.

3. 신(新)좌파

왕후이 칭화대 교수

중국의 신좌파는 독특한 중국적 정치환경에서 탄생했다. 서구 좌파의 주장과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구미 신좌파는 빈민의 편에 선다. 자본은 오직 이윤만 탐한다며 공격한다. 끊임없이 정부를 비판한다. 정부는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며 사회 공평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신좌파는 서구 좌파와 달리 체제를 공격할 용기가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회피한다.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 신좌파는 국가 통치 영역에서는 독창적인 주장을 펼쳤지만 독재 체제를 비판하지 않았다. 일부 신좌파 학자는 최근 빠르게 ‘주류 이데올로기’에 투신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민간의 독립성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 인물로는 왕후이(汪暉·56) 칭화대 인문학원 교수, 왕사오광(王紹光·61) 홍콩중문대 교수가 있다.

4. 입헌사회주의

후싱더우 베이징이공대 교수

6·4 이후 출현한 새로운 정치사조다. 입헌사회주의 지지그룹은 다양하다. 일부는 보편가치를 지지한다. 입헌(중국에서 쓰는 용어는 헌정·憲政)사회주의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용어를 사용할 뿐이다. 이들은 점진적인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주장한다. 일부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다. ‘입헌’이 당국체제의 근본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일당 독재체제를 만들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주요 인사로 후싱더우(胡星斗·53) 베이징이공대 경제학과 교수, 왕잔양(王占陽·59) 중앙사회주의학원 교수 등이 있다.

5. 신(新)국가주의

류위안 총후근부 정치위원

대외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신국가주의 정치사조는 천안문사태 이후 늘었다. 최근 들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민족주의의 변종이다. 선명한 반(反)서방 의식이 특징이다. 중국의 굴기(?起·우뚝 섬)에 따라 세계 속에서 중국이 새로운 지위와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해야 하며 미국을 대신해 새로운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좌파 작가와 펀칭(憤?·분노한 청년)의 정서에서 시작됐다. 최근 학계와 군부 핵심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표 인물로는 류위안(劉源·64) 총후근부 정치위원, 뤄위안(羅援·65) 전 인민해방군 소장 등이 있다.

6. 신(新)민주주의

장무성 중국세무잡지사 사장

마오쩌둥의 정치이념이다. 신민주주의 지지자 중에는 홍이대(紅二代·혁명 2세대)가 많다. 이들은 서방의 주의와 주장은 모두 부정한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당국(黨國)의 부패를 증오한다. 지도부에 “시한폭탄을 안고 산화하라”며 가차없이 몰아세운다. “좌경사조를 만나면 우익이, 우경사조를 만나면 좌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산당원은 투항하지 않는다”라고 믿는다. “신민주주의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중국공산당의 올바른 선택이며 중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한다. 6·4 이후 출현한 신민주주의 동조자들은 거만하지만 성실하다. 개혁가이며 보수주의자다. 스스로 진리라고 믿지만 시대착오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 인물로 장무성(張木生·67) 중국세무잡지사 사장이 있다.

7. 당내민주파

두다오정 염황춘추 전 사장

당내민주파는 개혁개방, 특히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보편적 가치에 찬성하고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그룹을 말한다. 은퇴 관리와 학자들이 대다수이며,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주요 인물이 노령으로 속속 숨지고, 시진핑(習近平) 권력이 강화되면서 당내민주파는 쇠퇴하고 있다. 이들 원로 공산당원은 젊어서 혁명에 투신해 ‘자유와 민주의 신중국’ 건설을 꿈꿨던 인물들이다. 대표 인물로는 마오쩌둥의 비서였던 리루이(李銳·98), 후지웨이(胡績偉·1916~2012) 전 인민일보 사장, 주허우쩌(朱厚澤·1931~2010) 전 중앙선전부장, 두다오정(杜導正·91) 염황춘추 전 사장, 셰타오(謝韜·94) 전 인민대부총장, 허팡(何方·93) 중국사회과학원 명예학부위원 등이 있다.

8. 유학치국론

장칭 양명정사 대표

천안문사태 이후 유학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학자 그룹이 등장했다. 이들은 유학을 활용해 중국 정치를 개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했다. ‘정치유학’을 빌려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제도를 설계하자고 주장한다. 완전한 유교정치 질서인 ‘유교입헌’을 제안한다. 일부는 자유주의와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요 인물로는 장칭(蔣慶·62) 양명정사(陽明精舍) 대표, 추펑(秋風·49) 베이징항공우주대 인문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등이 있다.

9. 신(新)권위주의

우자샹 자오쯔양 전 총서기 비서

80년대 중·후반에 유행했다. 지금까지 영향력이 상당하다. 신권위주의는 중국의 민주화를 목표로 한다. 단, 개혁에는 “경제가 우선, 정치는 나중”을 말한다. 시장경제화를 정치민주화의 우선에 놓는 논리다. 강력하고 권위 있는 세력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천안문사태 이후 신권위주의자는 중국 현실정치 속에서 더욱 융통성을 발휘했다. 자신의 주장이 집권 세력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랐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선택한 셈이다. 통치자의 비위에 맞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변신했다. 이론이 철저하지 못해 현실의 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들은 장기적인 체제 전환을 주장한다. 최근 일부 핵심 신권위주의자들이 집권층에 투항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주요 인물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비서였던 우자샹(吳稼祥·60), 샤오궁친(蕭功秦·69) 상하이사범대 역사학과 교수가 있다.

중국 독재 체제, 1949년 이후 세 단계 거쳐

 이상 9대 정치사상은 모두 자신들의 시각에 따라 중국을 해석하고 변혁할 것을 주장한다. 당국의 이데올로기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간 『중국을 바꿔라(改變中國)』를 통해 중국의 정치사조를 정리한 장보수(張博樹·60) 컬럼비아대 방문교수는 ‘아주주간’과 인터뷰에서 1949년 이래 중국의 독재체제가 세 단계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첫 단계는 1949년부터 76년이다. 마오쩌둥 독재와 유토피아 사회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기다. 이 프로젝트는 철저히 실패했다. 76년부터 78년까지 잠시 과도기를 지나 2단계에 진입했다. 78년부터 2012년까지 덩샤오핑 집권기와 포스트 덩 권위주의 단계다. 이 시기는 6·4 전후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개혁 10년’으로 불린 80년대에는 체제 안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이를 중국공산당의 노인 정치가 압살했다. 6·4 후 정통성의 위기에 빠진 당국 수뇌부는 정치 민주화는 거부하면서 시장화 개혁을 밀어붙였다. 30년간 고속 경제 성장에 성공했다. 이는 공산당 독재라는 현대식 전제주의(專制主義)가 특색인 세 번째 발전단계에 진입하는 조건이 됐다. 장 교수는 제 3단계를 시진핑식 신집권주의(新集權主義)라고 부른다. 시진핑은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권력을 다지기 위해 당과 국가의 중흥과 붉은 제국의 굴기를 내걸었다. 

 해외 민주운동권, 사상과 현실 괴리

 구미·호주·홍콩·대만의 화인(華人) 지식계는 양분된다. 첫째, 대학이나 싱크탱크의 학자 그룹이다. 이들이 현대 중국을 탐구한 연구 가운데 걸작이 적지 않으나 대부분 중국어로 쓰여지지 않았다. 일부 중국어 저술마저 홍콩이나 대만에서 출판돼 대륙의 지식사회와 상호작용할 수 없었다. 둘째 부류는 해외 민주운동권이다. 여기에도 우수한 학자가 적지 않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공산당을 반대하거나 극단적으로 증오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당국의 봉쇄 대상이다. 대륙으로 들어갈 수 없다. ‘현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대륙의 지적 생태계와 섞이는 것을 말한다. 해외 민주 운동권은 수십 년간 망명 생활을 전전했다. 인식과 판단이 중국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들이 고수하는 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사상적 공헌은 크지 않다. 현실과 괴리된 사상의 한계다.

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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