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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만든 구조단, 변변한 훈련장도 사무실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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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0일 오전 11시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부산해양경비안전서 주차장. 헬멧을 쓰고 구조용 벨트(하네스·harness)를 착용한 중앙해양특수구조대원들이 주차장 내 높이 15m짜리 조명탑 앞에 트럭을 세웠다. 트럭 지붕에 올라가 조명탑 중간쯤에 밧줄을 묶었다. 밧줄 다른 한쪽 끝은 주차장을 메운 승용차들을 피해 조명탑에서 20m쯤 떨어진 부두 쪽 지면에 고정시켰다.

 그러곤 들것에 구조대원 한 명을 눕혔다. 의식을 잃은 환자 역할이다. 다른 구조대원들은 들것을 밧줄에 매달아 지면으로 내려보냈다. 해안가에 좌초한 선박에서 밧줄로 부상자를 구출해 뭍으로 보내는 연습이다. 제대로 된 훈련 시설이 없어 구조단 임시 사무실 근처 주차장을 이용해 훈련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해양사고에 대비해 베테랑 인력을 뽑아 정부가 출범시킨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의 모습이 이렇다.

 특수구조단은 지난해 12월 창설됐다.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약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에서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로 무장된 특수기동구조대를 만들어 전국 어느 곳, 어떤 재난이든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끊임없는 반복 훈련을 통해 ‘골든타임’ 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런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국민안전처는 해체된 해경에서 구조·방재 전문 인력 62명을 선발해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창단 7개월이 지나도록 자체 청사와 훈련장은 없는 상태다. 지난 13~15일에는 경남 창원실내수영장의 깊이 5m 잠수풀을 빌려 잠수 훈련을 했다. 때론 멀리 대구시에 있는 중앙119구조본부 훈련장을 빌려 쓰기도 한다. 부산의 임시거처에서 121㎞ 거리다.

특수구조단 박광호 전술훈련팀장은 “유사시에 김해공항에 있는 헬기를 타고 출동해야 하는데 멀리 훈련을 나가면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이 때문에 원정 훈련을 갈 때마다 혹시 구조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만일에 대비해 김해공항에 대원 세 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대형 사고가 터지면 셋으론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수구조단은 청사도 없다. 예전에 전투경찰 등이 휴게실로 쓰던 부산해양경비안전서의 2층짜리 부속 건물을 임시 청사로 사용 중이다. 그나마 1층은 해경과 함께 쓰는 체력단련실·샤워실이어서 2층만 전용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구조 장비를 보관할 공간조차 없다. 그래서 잠수복과 오리발은 현관 앞에 놔뒀다. 건조실이 없어 젖은 잠수복은 계단 한쪽에 널어둔다. 감압 체임버와 공기통 등은 건물 바깥에 컨테이너 2개를 설치해 보관 중이다.

 이런 임시 청사도 헬기가 기다리는 김해공항과는 15㎞ 거리다. 헬기가 날아와 대원들을 태워간다지만 출동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구조단은 부산항 입구의 부산해양수산청 소유 땅(4620㎡)을 부지로 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여기에 청사를 짓고 헬기장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부지 확보를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해양교통관제센터(VTS)와 해양환경관리공단 역시 같은 땅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구조단의 올해 예산은 21억원. 돈이 부족해 필수 장비도 일부 마련하지 못했다. 대당 1억원 정도 하는 ‘무인수중탐사잠수정(ROV)’이다. 구조대원이 들어가기 힘든 깊은 곳에서 수색을 하는 장비다. 구조단 류용환 행정지원팀장은 “올해 예산 21억원으로는 대원이 심해에 들어갈 때 착용할 장비 같은 것을 구입하기에도 빠듯하다”며 “어쩔 수 없이 ROV 구입을 내년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출범한 특수구조단이지만 청사도, 전용 훈련시설도 없다 보니 사기가 처졌다. 익명을 원한 40대 구조대원은 “실력 있는 후배들이 이런 여건에서 일하겠다고 자원해 들어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신영 한국해양대 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직을 만들면서 당장 필요한 시설과 장비는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 상태라면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출동이 늦는 등의 이유로 구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해 정부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국민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대통령이 약속해 출범한 조직인 만큼 최대한 빨리 필요 시설과 장비를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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