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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절묘한 '회색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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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태국이 절묘한 '회색 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 각국을 동지가 아니면 적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태국만은 회색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탁신 시나왓 태국 총리가 겉으로는 이라크전에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을 거부하고 있지만 뒤로는 미국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탁신 총리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파키스탄에서 체포한 알카에다 고위 간부들을 태국에 데려와 심문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 때에는 미 군용기들이 방콕 남쪽의 우타파오 공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주 전 태국 당국은 CIA의 비밀정보를 받아 2001년 12월에 발생한 싱가포르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의 용의자를 붙잡기도 했다.

하지만 탁신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다.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친 것은 물론 이라크전 당시 미국이 동맹국 명단을 만들 때 태국을 포함하지 말 것을 요구했을 정도다.

미국을 돕는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자칫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돼 관광산업에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태국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벌어진 폭탄테러와 올해의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사스)사태로 동남아 관광객이 급감하기 전까지는 매년 1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던 주요 관광국이다.

이런 태국에 대해 미국은 내심 불쾌해하면서도 싫은 표정을 짓지는 못하고 있다. 뒤로 많은 도움을 주는 데다 미군의 전진배치 전략에서 태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알카에다의 테러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중요성이 높다.

미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게 이번주로 예정된 탁신 총리의 방미다. 이라크전에 반대를 표시했기에 탁신은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하고 미.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비즈니스 위원회 초청 형식으로 미국을 비공식 방문한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만난다. 부시가 이라크전 반대를 외친 외국 지도자를 미국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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