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급 ‘주사 변호사’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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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별정직 공무원’.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연수생들의 법률상 신분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를 공무원으로 채용할 때 직급은 5급이 기준이 됐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 시행 이후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변호사=5급’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바람은 중앙부처에서부터 먼저 불었다. 2012년 국가권익위원회가 6급 주무관으로 사시 출신 변호사를 채용한 게 신호탄이었다. 사법연수원 자치회 측은 “연수원 출신을 행정고시 출신 5급 사무관 아래에 두는 것은 공개적 모욕”이라며 발끈했지만 물길을 되돌릴 순 없었다. 현재 중앙부처에선 변호사를 6급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게 일반적이고 최근에는 7급 채용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방자치단체로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17일 “변호사 8명을 6급 일반직 공무원으로 채용키로 했으며 원서 접수(오는 29~31일) 및 전형을 거쳐 10월 초에 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시가 변호사를 임기제(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한 적은 있었으나 일반직 채용은 처음이다. 김영환 서울시 인사과장은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6급의 급여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로스쿨 또는 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들의 지원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변호사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겉으로는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시대적 추세라서 어떻게 하기 어렵다”며 수긍하는 분위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월 20명의 변호사를 7급으로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내자 변호사 25명이 지원했다. 지난달 민간 경력자를 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시험이 실시되자 7급 자리에 변호사 7명이 지원했다.

 박주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은 “처음엔 크게 반발했지만 변호사업계의 사정이 워낙 어렵다 보니 6~7급으로라도 공직에 가려는 이들을 막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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