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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가 지드래곤은 보이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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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의 ‘힙합 음악 연대기’ 앞을 지나는 지드래곤. 손씨는 현대 인물 화가다. 지드래곤과 함께 그의 음악 세계에 영감을 줬던 힙합 뮤지션들을 선정해 ‘hiphop’이라는 문자 그림을 그렸다.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피스마이너스 원-무대를 넘어서’

“I promise to love you.(나 그대에게 사랑을 약속합니다)”

 영국의 유명 현대미술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 작품이 어두운 전시장에서 빛난다. 폭신한 양탄자를 밟고 들어가면 프랑스 디자이너 장 프루베의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성공한 젊은이’의 예술적 취향을 드러내는 곳일까. “작품은 알지만 작가 이름은 최근에 알았다. 얼마 전 초대받아 간 전시에서 샀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가수 지드래곤(27·권지용)은 트레이시 에민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 ‘피스마이너스 원-무대를 넘어서’의 첫 장면이다. 빅뱅의 지드래곤과 현대미술가들이 협업한 전시로 미술관과 YG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주최했다. 지드래곤의 현대미술 컬렉션, 뮤직비디오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사진과 함께 전시했고, 국내외 현대미술가들이 지드래곤과의 교감을 통해 만든 회화·설치·조각 등 200여 점이 전시됐다. 마이클 스코긴스, 소피 클레멘츠, 제임스 클라, 콰욜라, 손동현, 권오상, 방&리 등 1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개막 전부터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술관을 아이돌 스타 홍보의 장으로 내줬다” “이 미술관 전시는 대체로 무료인데 이 전시 입장료만 성인 1만3000원으로 비싸다” “미술가들을 들러리 세웠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개막 20일 만의 성적표는 어떨까. 관객 1만136명이 들었다. 빅뱅 콘서트가 인터넷 예매 오픈 즉시 매진되는 것에 비하면 ‘굴욕’적인 수치일 수도 있겠다. 2013년 6월 13일 서울시립미술관서 개막한 고갱전은 20일 만에 4만485명이, 2012년 12월 12일 오픈한 팀 버튼전엔 20일간 6만6238명이 다녀갔다. 기존의 미술관 관람객들이 기대할법한 전시가 아니라는 점이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추천할 만한 전시인가” 묻는다면 “빅뱅 팬이 아니라면 굳이 가지 않아도 좋다”고 답해야겠다. 팬들에게는 공연과 뮤직비디오 외에 새롭게 변주된 성찬일 수도 있겠으나, 시립미술관은 팬 서비스 공간이 아니다. 기획 취지와 달리 전시에서 지드래곤의 예술관과 창작의 비밀,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27세 아이돌을 통해 새로운 전시 문법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성급했다 싶다. YG 측은 전시작 대부분을 구입해 해외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여기서도 미술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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