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굿모닝 레터'] 쓰레기를 주우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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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버려진 기타를 보았어요. 낡았으나 소리는 멀쩡했어요. 이십 대 때 간간이 혼자 갖고 놀던 클래식 기타가 있지만, 그래도 저는 기타를 들고 집으로 왔어요. 아는 사람 중에 필요하면 주려구요.

이사오고 갈 때마다 관리실 앞에 버려지는 가구나 물건들 중엔 꽤 쓸만한 것이 많답니다. 그 속에서 제 집에 들여온 옷장과 하얀 책장,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돈으로 치자면 백만원 가까이 되는 것이니 부자가 된 듯 즐거웠죠. 쓰레기도 한때 귀중품이었는데, 인생의 흥망성쇠를 느낍니다. 쓰레기 뒤지는 고양이에게도 사연이 있듯이 쓰레기마다 사연이 있겠지요. 물건도 마음을 지닌 건데, 이렇게 버려지니 참 아프겠구나 싶네요.

어둠 속에서 버려진 가구들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누구라도, 어떤 거라도 언젠가 버려지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죠.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사는 시간도 많지 않고, 서로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군요.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에 너무 늦은 시기란 없다"는 말도 있으니 위안을 삼고 하루를 기쁘게 시작하겠습니다.

신경림 <시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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