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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그리스가 그리 부러운가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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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두 달 전 올해는 그리스화(Hellenization)란 말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어쩌면 그렇게 잘 들어맞는지요. 돌아보면 지난해 유행어 ‘잃어버린 20년’ 일본화(Japanization)는 약과였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취임 1년을 맞은 7일 그는 “앞으론 일본처럼 된다는 게 칭찬이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숙제가 점차 까다로워지는데 문제를 푸는 능력은 떨어지고 있다”며 아베노믹스로 ‘경제 발목 잡는 정치’를 이겨낸 일본을 부러워했습니다. 딱 1년 만에 일본화를 보는 시선이 바뀐 겁니다. 격세지감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요.

 어디 일본뿐입니까. 저는 요즘 그리스를 보면서도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리스의 ‘배 째라’ 한 수에 독일·프랑스는 물론 미국까지 절절매고 있습니다. 유럽 정상들은 유로존 붕괴가 무서워서, 미국은 러시아·중국의 그리스 러브콜이 싫어서 그런 것이라지만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나쁜 남자 신드롬’ 아니겠습니까. 당장의 작은 폭력을 피하려고 영원한 속박의 길에 제 발로 들어서는 ‘착한 여자’ 같은 신세 말입니다.

 ‘나쁜 남자 그리스’에 끌려가는 유로존이나 채권단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괘씸한 생각마저 듭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특히 그렇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바로 그 IMF는 우리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미셸 캉드쉬 총재는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라며 연 25%의 고금리를 강요했습니다. 기업·은행 문을 닫고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게 했습니다. 거리엔 실직자가 쏟아졌고 국민은 장롱 속 금반지를 울며 꺼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국제 채권단은 땡전 한 푼 깎아주긴커녕 고금리로 이자까지 챙겨 갔습니다. 그땐 그걸 ‘축복’이라던 IMF가 앞장서서 “원금 탕감해주자”며 그리스는 끔찍이 챙깁니다. ‘가재는 게 편’이요 이유는 알겠지만, 화가 날 밖에요. 우리가 그렇게 피땀으로 돌려준 돈을 그리스 국민에 펑펑 퍼 주자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의 나쁜 짓은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2001년 유로존 가입 때부터 숫자를 속였습니다. 재정적자를 감춘 겁니다. 그래 놓곤 약한 자국 통화 대신 강한 유로화로 분수 넘치게 살았습니다. 낮은 금리로 실컷 남의 돈을 빌려 2004년 사상 최대 올림픽도 치렀습니다. 물론 90년대 이후 치러진 올림픽 중 가장 큰 적자를 냈습니다.

 그러나 돈 갚을 생각은 아예 안 했습니다. 전 국민이 세금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리스 언론에 따르면 매년 300억 유로, 국내총생산(GDP)의 10%가 탈세입니다. 개인병원에 가면 신용카드는 아예 안 받을 정도입니다. 2012년 그리스 정부가 아테네의 호화주택·차·요트를 가진 의사 150명을 조사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연 소득을 3만 유로 미만으로, 그중 30여 명은 1만 유로도 안 된다고 신고했습니다(『복지사회와 그 적들』).

 2011년에도 그리스는 ‘배 째라’로 성공한 전력이 있습니다. 유럽 정상들은 그때도 10시간 밤샘 회의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1000억 유로를 탕감해주고, 1000억 유로를 빌려줬습니다. 당시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이제 그리스 빚은 관리 가능하다”고 했지만 4년 뒤 빚은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줄이고 아끼고 졸라매서 남의 돈을 갚아야 했지만 그리스 국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걸 정치가 부추겼습니다. “떼일 줄 모르고 빌려준 게 바보”라며 채권자 책임론을 들고나와 이번에 국민투표까지 간 겁니다.

 그리스 사태는 보수 쪽이 주장하는 ‘과잉 복지’도 진보 쪽이 얘기하는 ‘샤일록 같은 채권단과 환율 주권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리스 정치·국민의 탐욕과 부패가 본질입니다. 남의 돈으로 누릴 자격 없는 ‘공짜 복지’를 탐닉한 대가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그리스를 희생자·피해자처럼 보는 시각이 많은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러다 ‘그리스화’도 약과인 세상, 그리스처럼 되는 게 부러운 세상이 올까 두렵습니다. 그게 당장 총선이 시작되는 내년부터일까봐 더 두렵습니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