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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깥에서 보는 한국

론스타에 대한 외국과 한국의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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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외로운 별’을 뜻하는 론스타(Lone Star)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별이 딱 한 개 박혀 있는 주기(州旗)를 쓰는 미국 텍사스가 생각날 수 있다. ‘론스타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Lone Star State of Mind)’라는 제목의 노래 앨범(1987)이나 영화(2002, 한국에서는 ‘텍사스의 얼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됨)를 상기하는 독자도 있겠다.

 한국에서는 단연 론스타 펀드(LSF)를 떠올리게 한다. 론스타는 미국 댈러스에 본부가 있는 글로벌 사모펀드다. 1995년에 창립한 론스타는 600억 달러에 달하는 15개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론스타 문제만큼 한국과 외국의 시각차가 큰 문제는 흔하지 않다. 또 한국만큼 론스타의 악명이 드높은 나라도 없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2003년이다. 론스타는 1조3000억원을 들여 외환은행을 사들였다. 2005년부터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되팔려고 했지만 2012년 하나금융에 3조9000억원에 매각할 때까지 매각 시도가 좌절됐다. 금융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때쯤 한국에서 론스타의 이미지는 진창에 빠졌다. ‘막대한 이익을 챙긴 외국 기업이 세금도 안 내려고 한다’는 소식에 한국 내 여론이 비등했다. 검찰은 론스타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론스타가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것이다. 론스타는 5조원대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불합리한 과세에 더해 당국의 거부에 따른 매각 지연을 주로 문제 삼고 있다. 한국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최종 판정이 나오기까지 1년은 더 걸릴 수 있다. 중재재판장은 영국 국적의 V V 비더(Veeder)다. 그가 과거 론스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어느 쪽 말이 옳은 것일까.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예단을 피하는 게 좋다. 론스타 문제는 지극히 복잡하다. 논쟁거리도 많다. 론스타에 대한 글들은 대부분 극도로 편파적이다. 론스타에 대한 한국인들과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 간의 인식차가 우려할 정도로 너무 크다.

 한국에는 론스타를 좋게 표현하는 말이 없다. ‘흡혈귀’나 ‘먹튀(eat-and-run)’ 같은 말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론스타는 ‘한국의 국부(國富)를 훔쳐간 강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은행을 살려낸 게 아니라 은행강도질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물론 외국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조세 부담을 줄이려고 해외 자회사를 활용하는 것은 점점 더 지탄의 대상의 되고 있다. 론스타의 경우에는 벨기에에 있는 자회사를 동원했다.

 하지만 외국의 재계는 예나 지금이나 론스타가 ‘희생양’이라고 본다. 한국 검찰이 론스타를 기소한 게 ‘박해’라는 것이다. 한국에 이미 투자했거나 앞으로 잠재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는 기업들이 내린 결론은 압도적으로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다. 론스타 사례를 통해 외국 기업들이 얻은 교훈은 ‘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한국에서 큰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화를 당할지어다’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관점이 언어도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가 현실이 돼 버린다.

 불과 몇 년 전 ‘허브(hub)’가 한국에서 유행어였다. 서울을 동북아 금융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 계획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론스타 분쟁을 질질 끄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2012년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론스타 사례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김석동 전 위원장은 한국에서 소수파다. ‘계속 싸우자’는 쪽이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분쟁을 오래 끌수록 손실만 더 커진다. 한국 정부엔 론스타와 분쟁을 끝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언론 매체의 날 선 비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문제에는 신중한 분석을 내놓는 한국의 매체들도 론스타 문제엔 피상적인 데다 공정하지도 않은 편파적인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한국인들과 론스타는 서로 ‘당한 것은 우리다’라는 입장이다. 중간 입장은 없다. 한국과 론스타를 모두 만족시키는 중재재판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론스타를 향한 분노가 더 큰 손실을 한국에 이미 입혔다는 것이다. 한국이 바라는 것은 친(親)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인가, 아니면 투자자들이 꺼리지만 안전한 ‘한국 요새(fortress Korea)라는 철옹성을 쌓는 것인가.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