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오디세이] 분단 70년, 평화가 와야 통일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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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 7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는 조국의 강을 건널 수 없다. 소설가 김훈이 통일 한국의 국경이 될 압록강을 배로 지나며 망원경으로 북한 신의주 지역을 살피고 있다. ‘평화 오디세이’ 글씨는 음악인 장사익이 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지난 6월 22일부터 27일까지 우리나라의 여러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평화 오디세이 2015’ 행사에 참가했다.

 우리 일행은 단둥(丹東)에서 압록강 하구를 돌아보고, 퉁화(通化)·지안(集安)에서 고구려 초기의 유적지들을 답사했다. 자동차 편으로 백두산에 올라가서 북한 쪽 산하와 만주 벌판을 바라보았다. 만주는 넓어서 지평선이 하늘에 잠겨 있었고, 백두산 천지의 검은 바위에는 화산이 폭발할 때 끓어오르던 불의 힘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두만강 하구로 이동해서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국경이 마주치는 훈춘(琿春)·팡촨(防川) 지역을 돌아보았다.

 여러 선후배들이 아침 8시부터 세미나를 열어 광복과 분단 70 년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했고, 평화와 통일의 방안을 모색했다.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도 토론은 뜨겁게 전개되었다. 말들은 무성했으나, 70년 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조국의 강을 건너갈 수 없었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목을 길게 빼서 건널 수 없는 저편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소와 개와 마을들이 너무나 가까워서 슬프고 답답했다. 나는 육군에서 제대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내 아들보다 훨씬 어린 북한군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분단 70년 동안 판문점에는 얼마나 많은 헛된 언어와 불신과 증오가 쌓여 갔던 것이며, 첨단 무기로 서로를 겨누어 가며 또 평화와 통일을 말해야 하는 이 모순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할 것인지는 난감했으나 조국의 강은 그 깊은 협곡과 넓은 들을 자유롭게 굽이치고 있었다. 이 무서운 적대 관계의 뿌리가 대체 무엇이었길래 70년의 세월이 지나도 남북은 동족과 조국 산천의 이름으로도 화해할 수가 없는 것인가. 적대 관계의 70년은 너무나 길어서 이제 분단은 일상의 질서와 정서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안고 돌아왔다.

 철조망이 끝없이 강을 따라왔으나 강물은 합치고 휘돌면서 기어코 제 갈 길로 흘러가고 있었다. 큰 강은 스스로 자유로웠고, 역사는 산천 앞에 부끄러웠다. 이 부끄러움 안에서 희망의 어린 싹이 돋아날 수 있기를 나는 강에게 빌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내 어수선한 잡감(雜感)을 글로 쓰려 하니, 북쪽의 커다란 산하가 그만두라고 한다. 부끄러운 글을 넘긴다.

글=김훈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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