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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여름, 압도적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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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여름이 다가옵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에서는 무더위를 식혀줄 미스터리 소설 3권을 골랐습니다. 미국 작가 도나 타트의 퓰리처상 수상작,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일본의 신예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소재도, 스타일도 다양합니다. 가뭄에 불타는 대지, 시원한 빗줄기 같은 소설 속에 한번 빠져볼까요.

미술관의 테러사건, 명화가 사라졌다

10년 주기로 세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도나 타트. [사진 베이어울프 시언(Beowulf Sheehan)]

황금방울새 1·2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각 권 580·488쪽
각 권 1만5000원·1만4000원

미술관에 대한 폭탄 테러 와중에 사라진 17세기 걸작 회화 작품의 행방을 둘러싼 우여곡절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기가 질리는 분량이지만(1·2권 합쳐 1000쪽이 넘는다!) 이야기가 힘이 있어 술술 읽힌다.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들이 소설의 기본 뼈대를 이루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의 다채로운 인생살이가 감칠맛 나는 속살 역할을 톡톡히 해서다. 스릴러의 거장 스티븐 킹은 이 소설에 대해 ‘투수가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가는 경기’ 같다는 평을 했다고 한다. 그런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긴 소설 분량 내내 흠잡을 대목이 없어 보인다.

 소설은 주인공 시어도어 데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 객실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립된 첫 장면을 짧게 보여준 후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세 살 시오(시어도어)는 말썽을 부렸다. 엄마와 함께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 가던 길에 잠시 들른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다. 엄마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혼돈의 상황에서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그림이 소설 제목과 이름이 같은 ‘황금방울새’다.

 웬만하면 주인공이 죽지 않는 ‘소설 일반 원칙’에 따라 시오가 구사일생 구출돼 걸작을 당국에 신고하고 말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소설의 전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엄마의 사망 사실이 밝혀지고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시오는 당국에 그림 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점점 밝히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설은 그림을 둘러싼 갈등을 신속하게 해결하지 않는다. 그림의 향방을 바닥에 깔아둔 채, 뉴욕 상류층 자제인데다 똑똑하지만 문약해 왕따로 괴롭힘 당하는 앤디와의 아기자기한 우정, 바카라 도박으로 연명하는 무책임한 아버지의 라스베가스 인생, 비행 청소년 보리스와의 지독한 음주·마약 흡입 행각 등을 공들여 묘사한다. 청소년기의 극단적 일탈과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첫사랑 소녀 피파에 대한 애틋함을 끝내 잊지 못하는 대목에서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연상시킨다.

 시오는 결코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다. 약물로 청소년기를 탕진한 탓에 어렵게 대학에 진학하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그림을 눈 앞에 둔 대결장면에서는 정당방위지만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런데도 사실상 훔친 그림의 처리가 원만하게 마무리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범죄의 역설 …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864쪽, 1만8800원

사회파 미스터리에 강한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는 한국에서도 ‘미미 여사’라는 애칭과 함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 ‘화차’(2012)의 원작도 그의 소설이다. 이번 신작은 특히 탐정 아닌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하는 것부터 매력적이다. 대기업 사보 편집자인 스기무라는 남 보기엔 속칭 오뉴월 개팔자다. 회사 회장의 사위이니 생계걱정도, 고용불안도 없다. 대신 그는 출세의 욕망을 품어선 안 되는 처지다. 아내는 회장의 금지옥엽이되, 정부가 낳은 딸이다. 바쁜 보직이 아닌데다 예리한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춘 스기무라는 이전 작품에서 회장 주변이나 회사 직원에게 사건이 벌어지자 가욋일로 탐정 노릇을 한 바 있다. (『누군가』 『이름 없는 독』 등).

 이번엔 사건 발단부터 직접 휘말린다. 웬 노인이 한갓진 노선의 버스를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는데, 승객 중 하나가 마침 스기무라다. 인질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지만, 본격적인 미스터리는 이제부터다.

미야베의 소설은 두뇌만 자극하는 추리게임이 아니다. 사회적 범죄를 소재 삼아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의 심리까지 세밀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인간을 개조의 대상으로 삼는 비뚤어진 시각, 연약하고 절실한 마음을 공략하는 사기 범죄, 특히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비극적 역설을 통해 ‘악의 전염’이란 묵직한 주제를 끌어낸다. 복수와 속죄가 엉키는 결말은 애잔한 마음마저 불러낸다. 일본어 원제의 뜻(‘베드로의 장례’)을 곱씹게 한다.

 미야베 소설 치고도 두꺼운 편이라 호흡이 늘어지는 듯한 대목이 없진 않지만, 다 읽지 않곤 못 견디게 하는 전개와 묘사의 힘이 역시나 대단하다. 묘사는 마치 현장을 함께 보고 듣는 듯 생생하다. 실은 쓸모 없는 밑밥도 없다. 사건과 무관한 듯 보였던 스기무라의 여러 일상마저 하나로 연결되는 결말에는 그 자신의 삶에도 새로운 전기가 닥친다. 다음 작품에서 그는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삶을 살겠지만, 그의 장인이자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회장 같은 인물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싶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건 현장에서 죽은 경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야경(夜警)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444쪽, 1만5000원

요네자와 호노부(米澤?信)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데뷔작 『빙과』는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올해는 『야경(夜警)』으로 ‘3관왕’을 차지했다. 공신력 있는 미스터리물 차트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미스터리가 읽고 싶다’‘주간문춘(週刊文春) 미스터리 베스트10’에서 사상 최초로 모두 1위에 올랐다. 더구나 『야경』은 나오키상 후보였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거머쥔 셈이다.

 그의 작품은 마치 동굴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암벽을 더듬으며 한 발짝씩 빨려드는 기분이다. 짧은 호흡과 간결한 문장. 그 사이에 여운과 긴장이 고인다. 그게 이 동굴의 커다란 매력이다. 언뜻 보면 어둠, 읽다 보면 어느새 고요에 젖게 된다.

 『야경』에는 모두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다. 때로는 경찰소설의 풍미가, 때로는 탐미적 심리가, 또 때로는 함정과 트릭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의 재미가 흐른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야경’은 살인사건을 다룬다. 갓 들어온 파출소의 신참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총을 쏜 뒤 흉기에 목숨을 잃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 뒤 작가는 미스터리의 징검다리를 깐다. 하나씩 밟고 가다가 문득 마주치는 건 ‘인간의 내면’이다. 누구나 가슴에 묻어둔 채 쏘지 못하는 총알 같은 욕구 말이다.

 두 번째 단편 ‘사인숙(死人宿)’은 숲속의 온천 여관 이야기다. 주위에 화산 가스가 있어 자살을 원하는 투숙객들이 종종 찾는 곳이다. 종적을 감춘 옛 연인 사와코를 찾아 온천 여관에 간 주인공은 누군가 떨어뜨린 유서를 보게 된다. 자살을 막고자 동분서주하는 주인공과 그 사이로 빠져나간 투숙객, 둘 사이의 거리감은 아득하다. 작가는 이를 통해 ‘관계’를 말한다. 마지막 대목에서 “아니야.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라는 사와코의 대답, 그 울림이 작지 않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S BOX] 올여름, 이 책을 권하는 이유

●박현주 (칼럼니스트, 번역가) : 『소름』(로스 맥도널드 지음, 김명남 옮김, 엘릭시르, 524쪽, 1만4800원) “하드보일드의 문체로 쓰인 심리 스릴러. 결말 15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제목을 그대로 실감할 수 있다.”

●이현우 (필명 로쟈, 출판평론가) : 미스터리 전문 격월간지 ‘미스테리아’ 창간호 “진정한 미스터리는, 우리가 이제야 이런 잡지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김봉석(문화평론가) : 『페이스오프』(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박산호 옮김, 황금가지, 508쪽, 1만5000원)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추리·스릴러계의 어벤저스급 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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