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국인 고용법 약속대로 처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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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명에 육박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강제 출국 문제로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들의 출국 시한을 올해 3월로 유예시킨 바 있고, 다시 8월로 연기했었다. 법무부는 8월 말에 강제 출국을 예정대로 강행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중소기업의 인력대란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태가 빚어진 것은 외국인 고용허가법안의 국회통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리를 정부가 맡고, 이들에게 노동3권과 산재.건강보험 등 내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수준의 권리와 처우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저임금과 인권침해에 시달리는 이들에 대한 처우를 향상시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고,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법이 시행되면 3년 미만 체류자 약 20만명은 2년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취업할 수 있는 신분으로 전환된다.

시민단체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던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13일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고, 별도의 정부안도 마련된 상태다. 이 법의 제정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치권은 입법을 주저하고 있다. 임금 부담이 높아질 중소기업의 형편을 감안했다고 한다. 입법이 미뤄질 경우 8월 말 강제 출국을 시키든지, 아니면 다시 출국 시한을 유예시켜야 한다. 강제 출국시키면 중소기업이 조업 차질을 빚을 것이요, 유예한다면 정부가 또 한번 결정을 뒤집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세간에는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내년 4월 총선 이전까지는 이 법을 표류시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무책임한 처사다. 정도(正道)대로 입법하는 것이 옳다. 일괄입법이 무리라면 입법은 하되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부칙을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