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교통사고 치사율, 맑은 날보다 32% 높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해 7월 6일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시삼거리. 빗길에서 25t 화물차를 몰던 유모(43)씨가 뒤늦게 적신호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유씨의 차량은 신호 대기 중이던 1t 화물차를 들이 받고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용차에 타고 있던 김모(77)씨 등 두 명이 숨지고 유씨 등 네 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8월 3일에는 남해고속도로 마산 방향에서 서김해 쪽으로 향하던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었다. 승용차는 마주오던 차량 두 대와 잇따라 충돌했다. 승용차에 탑승했던 손모(27)씨 등 두 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손씨가 빗길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뒤 중심을 잃고 반대편 차량과 충돌한 것으로 추정했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빗길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자연 커진다. 특히 빗길에선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인명을 앗아가는 사고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1일 교통안전공단(이사장 오영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빗길 교통사고는 1만7456건이었다. 이중 460명(2.64%)이 사망해 맑은 날 발생한 교통사고의 치사율(1.99%)보다 32% 높았다.

 요즘처럼 장마와 휴가철이 겹친 7~8월에는 빗길 교통사고가 크게 증가한다. 2014년 한 해 동안 월 평균 빗길 교통사고는 1455건(사망자 38명)이었다. 그러나 7~8월 빗길 사고(사망자) 수는 2893건(72명)으로 두배가량 됐다.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안전처 정관목 교수는 “7~8월은 장마와 국지성 호우가 잦고, 휴가철 장거리 이동 차량이 증가하면서 빗길 과속·부주의·졸음 운전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빗길 운전이 위험한 이유는 브레이크를 밟고 실제 멈출 때까지 이동하는 제동거리가 평소보다 길어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주행 속도를 줄이고 앞 차와의 안전거리를 보통 때보다 50% 이상 여유 있게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교통안전공단 미래교통전략처 김민우 연구원은 “맑은 날보다 속도를 20% 정도 줄이고 폭우가 쏟아질 때는 절반으로 감속해야 한다”며 “빗길에서 과속과 근접주행은 교통사고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빗길 고속 운전이 대형 사고를 부르는 건 타이어 수막(水膜) 현상도 한몫한다. 타이어 회전이 빠르면 빗물이 타이어 홈을 따라 배출되지 않고 표면에 수막을 형성한다. 이 수막 때문에 타이어와 지면의 접촉면이 줄어들고 차량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된다. 정관목 교수는 “수막이 형성되면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고 쉽게 미끄러져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며 “과속을 삼가고 타이어의 공기압을 평소보다 10% 정도 높여 홈 사이로 물이 잘 빠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어의 마모 정도도 빗길에선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지난달 18일 교통안전공단의 빗길 운전 실험 결과에 따르면 타이어의 마모도에 따라 제동거리는 최대 70% 이상 길어졌다. 도로가 젖은 상태에서 시속 100㎞ 달리다 급제동할 경우 새 타이어(홈 깊이 7㎜)의 제동거리는 53m였다. 그러나 마모가 심한 헌 타이어(1.6㎜)는 91m로 나타났다. 김민우 연구원은 “제동거리가 길면 앞 차량과의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모가 심할수록 감속이 되지 않고 충격도 커지기 때문에 인명피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브레이크 패드의 상태도 미리 점검해야 한다. 특히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금속 마찰음이 들리면 패드의 마모 상태를 봐야 한다. 또 빗길에선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와이퍼 작동 여부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얼룩이 남거나 ‘드르륵’ 소리가 들린다면 교체해야 한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