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안데스 산맥에서 남미이민의 꿈 산산조각|미여객기 추락사고 한국인희생자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미에 한국인의 의지를 심으려던 6가구 9명 이민의 꿈이 새해벽두 눈덮인 안데스산맥에서 부서졌다.
2일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미이스턴항공사소속 보잉727기 추락사고로 전원 사망한 탑승자가운데 9명의 한국인승객은 모두 남미파라과이·에콰도르에 이민했거나 이민 가던 사람들로 밝혀져 참변소식이 전해진 국내의 연고자 가정은 비탄 속에 넋을 잃었다.

<홍종수씨 가족>
홍종수씨(31)와 홍씨의 매제 박창재씨 (30) 두집 가족 6명은 에콰도르 이민길에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홍씨와 박씨는 에콰도르에 먼저 이민가 었는 홍씨누나 종순씨 (43) 의 초청으로 지난해 25일 각각 처자 2명과 함께 출국, 이틀 뒤 현지도착예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였는지 도착이 지연돼 왔었다.
홍씨의 부모와 큰형 종남씨(37·상업) 가 살고있는 서울 신월동 566의18 단칸셋방에는 비보가 전해진 3일 작은아버지 기학씨 (52·경기도 파주군), 친구 박종남씨(31·난방업) 등 친척·친지 20여명이 달려와 비보에 할 말을 잊고 있었다.
홍씨의 아버지 기빈씨(68)와 어머니 한성우씨(바)는 막내아들인 홍씨와 며느리 구윤숙씨(24), 손녀 정현양(2)뿐만 아니라 박씨에게 시집간 막내딸 종옥씨 (28)일가족 3명까지 잃게된 엄청난 슬픔 앞에 몸져 누웠다.

<박창재씨 가족>
숨진 홍씨의 매제인 박창재씨의 노모와 큰형 명재씨(50·대리점업)가 사는 서울 용강동 대교맨션 가동 301호에는 박씨의 형6명과 누님·조카등 30여명이 모여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
박씨 형제들은 3일 하오 5시까지도 혈압이 높은 노모 강희원씨(72)에게 막내의 참변소식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숨겼으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노모는 그 충격으로 한때 경련증세를 일으켰다.
박씨는 이민을 위해 10여년간 근무해온 대한항공 정비사직을 지난 6월 그만두고 부인 홍종옥씨, 아들 광서군(3) 및 처남 홍종수씨 가족과 함께 출국했으나 이번 사고로 이민의 꿈이 산산조각나 버린것.
박씨부인은 임신 2개월이어서 마의 안데스산맥은 이들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셈이다.

<오정세씨>
외아들인 오정세씨 (31·볼리비아교민) 의 누님 외숙씨(36)가 살고있는 서울 이태원동 청아아파트 8동207호에는 소식을 듣고 급히 부산에서 올라온 오씨의 홀어머니 임재순씨 (56)가 몸져 누워있었다.
임씨는『정세는 출국직전 부산에서 약혼까지 했기 때문에 연말에는 귀국해 결혼한뒤 다시 나가겠다고 했는데 죽었다니 믿을 수 없다.』고 애통해 했다.
오씨는 동아대 토목과를 나온 토목기사로 정지개발·삼성종합건설 등에서 사우디아라비아근무를 4년간 하고 지난 7월 혼자 이민 갔었다.
○…숨진 홍종수씨 및 박창재씨 일가족 6명과 함께 에콰도르를 목적지로 하고 서울에서 같은 여객기편으로 출국했으나 도중에 행선지를 바꾼 덕에 참변을 면한 일가족이 있다.
행운의 일가족은 박택모씨(60·무역업)부부 및 두 아들등 4명. 서울 회현동 100의16에 사는 큰딸 미선씨(29)는『사고 소식을 듣고 처음엔 불안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마지막 전화를 받은 2일 낮12시가 사고 이후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며『그러나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리도 애통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선씨의 아버지 박씨는 국제전화를 통해『에콰도르로 가려다 파라과이에 있는 친지의 조언을 듣고 파라과이에 정착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는 것.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