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 TV 케이스를 2억 뻥튀기 … 1500억 허위 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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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소 제조업체가 수출 실적을 부풀려 시중은행에서 1500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전성원)는 관세청법 위반, 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플라스틱 부품 제조업체 후론티어 대표 조모(56)씨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회사 경리과장 유모(34)씨도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은 관세청이 적발해 지난달 17일 송치한 것으로 3조2000억원의 무역금융 사기 대출을 받은 모뉴엘 사건과 판박이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 생산원가가 개당 2만원인 플라스틱 TV 케이스를 개당 2억원으로 부풀리거나 허위로 물품을 생산했다고 속여 수출 신고를 했다. 일본 업체에 수출하는 것처럼 신고한 뒤 수출채권과 무역보험공사에서 발급받은 수출보험·신용 보증서 등을 시중은행 5곳에 제출해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해당 은행은 기업은행·국민은행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본 수입업체도 조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였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조씨 등은 수출채권의 만기가 다가오면 허위 수출 신고를 반복해 ‘대출 돌려막기’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까지 347억원을 갚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조씨는 대출금 가운데 230억원을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특히 조씨가 회사 계좌에서 인출한 현금이 140억원에 달하는 것에 주목하고 해당 자금이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조씨를 상대로 무역보험공사 관계자의 연루 여부를 캐고 있다. 중소업체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데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이 결정적이었다는 판단에서다.

 조씨는 대출금 중 2600만 달러(약 29억원)를 미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주택 구입비 등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국외재산도피 혐의가 적용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조씨는 월세 1800만원에 관리비 350만원을 내는 고급빌라에서 생활하며 페라리·람보르기니 등 외제차 10여 대를 리스해 몰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법인카드로 65억원을 썼고 명품과 상품권·금괴를 사기도 했다고 관세청은 설명했다.

 앞서 모뉴엘 사건 수사에서 이 업체 박홍석(52·구속기소) 대표가 여신 한도를 늘리고 신용 보증을 받기 위해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 등에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계륭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모뉴엘 여신한도를 늘려주는 대가로 박 대표로부터 기프트카드와 신용카드 등 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뇌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수출입은행 간부 한 명도 기프트카드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최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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