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계 원로 허영 교수 - 거부권은 헌법 지키려는 노력 정부에 군림하려는 국회가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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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호 04면

2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앙포토]
헌법학계 원로 허영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균형의 한 메커니즘이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한다고 취임 선서를 했기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는데도 법안을 서명·공포하면 대통령이 헌법을 어기는 거다. 헌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대통령 거부권 정국] 두 헌법 학자가 진단하는 문제점

-국회가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나.
“(개정안의) 전체 문맥 속에서 정부를 구속하는 강제력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가 핵심인데 나는 구속력·강제력이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본다. 현행 국회법은 ‘모법에 맞지 않는 시행령을 국회가 행정부에 통보한다’라고만 규정돼 있어 행정부에 그 처리 여부에 대해 재량권을 줬다. 그게 헌법의 취지다. 그런데 이번에 이를 ‘(국회가) 요청하면 (행정부는) 처리해서 결과를 보고하라’고 개정했다. 이는 국회가 요청하는 내용을 그대로 처리해서 보고하라는 것, 그러니까 구속력·강제력이 있는 거다. ‘요구’라는 문구를 ‘요청’이라고 바꿀 때 국회의장의 제안대로 ‘정부는 검토해서 처리한다’는 개념이 들어갔으면 행정부에서 (처리 여부를) 검토하는 재량권을 주는 거니까 굳이 강제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건 빼버리고 ‘요청’으로 한 글자만 바꿨기 때문에 위헌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다.”

-국회가 수정 요청을 해도 행정부에서 따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국회가 법적 대응뿐 아니라 정치적 대응을 통해 행정부를 물 먹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 법 해석이라는 건 물리적인 해석도 중요하지만 법률안이 탄생한 입법의 의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입법 목적을 보면 통보할 수 있는 걸 (요청하는 걸로) 바꾸겠다는 의도는 정부를 강제하겠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뭐하러 법을 개정하나. 이런 입법의도를 보면 구속력·강제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게 온당한 법 해석이다.”

-모법과 어긋나는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을 요청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모법에 어긋나는 행정입법은 당연히 무효다. 하지만 무효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갖는 거다. 국회는 굳이 위헌적인 규정을 만들지 않아도 사전 통제를 통해 얼마든지 행정입법을 통제할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입법부와 행정부 간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큰 원죄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 갈등이 생긴 거다. 공무원연금법만 처리하면 되지 왜 다른 법안을 끼워 넣기 식으로 처리하나.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특정 법안 통과를 위해 다른 법안을 끼워 넣는 관행이 생겼고, 그걸 지금까지 받아줘 온 여당도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는데.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제왕적 국회가 돼서도 안 되고 제왕적 대통령이 돼서도 안 된다. 견제 균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은 제왕적 국회를 강화하고, 입법부가 행정부 위에 군림하려는 요소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거다.”

-국회가 문제라는 이야기인가.
“본래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나라가 안 된다고들 하는데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국회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져 제왕적 국회가 문제가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능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툭하면 총리·장관 나오라고 하면서 붙들어두고 질문을 하면서 행정을 마비시키고, 답변은 제대로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한다. 이건 행정부 위에 완전히 군림하려고 하는 자세다.”

-거부권 정국,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루속히 국회선진화법을 손질해서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법이 지향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신이 살아나서 책임정치를 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정상화돼야 한다. 국민이 총선을 통해 만들어진 국회 구도가 있는데, 이 틀 속에서 정치가 굴러가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소수가 다수의 역할을 기대하려고 하니까 국회가 정상화가 안 되는 거다. 야당도 내년 총선을 통해 다수당이 되길 원하는 거 아니냐. 이를 생각해서라도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데 앞장서면 국민이 야당 손을 들어줄 거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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