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기능사 임순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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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간판기능사 임순자씨 (41·한국종합광고사)는 『수정약국』이라고 매끈하게 써내려간 자신의 필치가, 제법 만족스럽단다.
허름한 널빤지하나를 다듬고 색칠한지 2시간남짓. 근사한 목간판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간판만드는 일감을 맡으면 마치 국민학교때 기다리던 공작시간을 맞이한 느낌이에요.
새롭고 재미나고 진짜 제솜씨인지 신기하기도 하고요. 일할때마다 손재주 주신것을 늘 감사히 여깁니다.』 올해로 5년째 간판일을 맡아온 임씨는 오늘도 새벽4시에 일어나 아침묵상으로 한주일을 시작한다.
곤히 잠든 딸(국교5년)과 남편곁을 살며시 빠져나와 벼루에 먹을 갈고 주문받은 간판의 글씨를 한자한자 미리 적어본다.
새벽 붓글씨 연습이 마음먹은대로 잘 풀리는 날이면 그날은 틀림없이 주문이 밀린다.
임씨가 여성으로선 생소한 간판일에 뛰어든 것은 『딸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않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딸 하나만이라도 잘기르고싶다』는 생각에서 미련없이 단산을 했다.
『남편의 박봉으로는 도저히 가난에서 벗어날수가 없더군요. 궁리끝에 보세스웨터를 꿰매는 일을 꼬박 10년을 했지요. 특정한 기술없이 여자가 돈벌이를 하는것이 그렇게 어렵더군요』그후 다시 일감을 구한것이 바로 간판만드는 공장의 잡역부. 등너머로 조금씩 배운 기술로 집에서 실습을 해보고 6개월뒤 구멍가게의 「담배」 팻말을 아크릴로 만들어 본것이 그녀가 만든 첫번째 「작품」 이었다.
그녀의 실력이 점차 인정을 받게되자 스카웃손길도 뻗쳐 초봉 월10만원에서 지금은 35만원의 월급을 받는 어엿한 간판기술자로 성장했다.
그녀의 장기는 붓글씨체의 목간판. 널빤지에 붓글씨를 쓰고 조각칼로 판다음 니스를 칠하고 다시 에나멜로 글씨를 쓰고 다시 니스를 칠하면 하나의 간판이 완성된다.
하루의 일감은 5∼6개정도. 평소에 틈틈이 써온 붓글씨가 작업에 큰 보탬이 됐다.
요즈음 그는 공고도장(간판) 기능사자격증시험의 최종합격을 기다리고있다. 비원앞 한국종합기술원의 3개월강의를 빠짐없이 다닌 댓가로 1차 이론시험에는 합격했고 12월말 .발표되는 2차시험에만 합격되면 그가 제1호 여성광고도장기능사가 되는 셈이다.
『그동안 각종 페인트를 많이 다루어봐서 이번 실기시험은 왠지 자신이 있어요. 86, 88올림픽을 앞두고 간판일도 수요가 많아지겠지요』 드릴· 송곳· 끌·톱질로 손끝마디마디마다 상처가 아물날이 없는 그는 월급의 반이상을 꼬박붓는 딸아이의 교육보험통장이 큰 위안이 되고있다. <육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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