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물러서며, 한숨 돌린 그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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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보세 … 치프라스 바라보는 메르켈 그리스 구제금융을 논의하기 위해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맨 왼쪽)가 참석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브뤼셀 AP=뉴시스]

그리스 구제금융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럽연합(EU) 긴급 정상회의가 끝난 22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뺨을 친근하게 쓰다듬었다. 추가 면담을 위해 회견장을 떠나며 취한 다소 익살스러운 포즈였다. 파국을 향해 치닫던 그리스 위기가 한숨 돌리게 됐다. 구제금융 타결 가능성이 커지며 유럽과 뉴욕 증시와 채권 시장은 모두 상승으로 장을 마쳤다.

 그리스는 ‘운명의 48시간’을 벌었다. 긴급정상회의에 앞서 그리스가 내놓은 최종 협상안에 채권단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타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을 거쳐 24일 열리는 유로그룹 회의에서 합의를 한 뒤, 25일 EU 정상회의에서 타결할 것이란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한 유럽연합(EU) 긴급정상회의가 열린 22일(현지시간) 유로존과 EU 잔류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지지자가 그리스 아테네 의회 앞에서 대형 국기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아테네 AP=뉴시스]

 이렇게 되면 각국 의회 승인과 아직 지급되지 않은 분할 지원금(72억 유로) 지급 등 협상과 관련한 후속 조치도 이달 말까지 마무리된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약 2450억 유로)을 받았다. 이달 말로 끝나는 이 프로그램의 지원금이 집행되면 그리스는 30일 만기인 국제통화기금(IMF) 부채(15억4000만 유로)도 갚을 수 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넘기는 것이다.

 채권단을 다시 협상장에 끌어 앉힌 그리스의 최종 협상안은 세수 증대와 연금 제도의 미세 조정으로 재정 수지를 개선하는 게 골자다. 그리스 현지 언론 카티메리니에 따르면 그리스는 올해 재정 감축 규모를 애초 20억 유로에서 27억 유로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51%에 해당한다. 내년에는 그 규모를 36억 유로에서 52억 유로(GDP의 2.87%)로 늘린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개편하고 고소득층 누진세 기준도 낮춰 잡았다. 기업 특별부과세 대상 기준도 연간 순이익 150만 유로 이상에서 50만 유로 이상으로 내렸다. 조기 퇴직 지원을 폐지하는 한편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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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가 한 발짝 물러선 것은 더 큰 전투가 남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달 말의 부채 상환을 넘어서 그리스의 더 큰 목표는 3000억 유로가 넘는 그리스 총 부채에 대한 탕감 수단을 얻는 데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그리스의 제안에 새로운 게 전혀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그리스의 제안이 공공재정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것인지 의구심을 드러내며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권단 설득뿐만 아니라 국내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긴축 완화를 주장하며 집권에 성공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연금 감축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컨설팅 업체인 테네오 인텔리전스의 울팡고 피콜리 이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그리스 국내 정치 상황을 볼 때 새 협상안이 통과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부채 탕감에 대한 공감대 없이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게오르게 스타타키스 그리스 경제장관은 그리스 정부가 크게 양보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정부가 기존에 설정한 협상금지선(레드 라인)을 깨뜨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종 협상안에 연금과 임금 삭감, 전기료에 대한 부가세 인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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