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면 증언자' 신원도 몰랐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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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탈북자 두명이 복면을 쓰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의 인권탄압 실상을 증언했다. 우리 정부는 그 탈북자들이 미국 상원의 청문회 증언을 위해 미국에 간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이 정황은 오늘날 한.미 간에 원활한 정보교류가 안 되고 있지 않느냐는 세간의 의문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서로 원활한 정보교류를 하는 것은 우리 안보 여건상 필수적이다. 남북한이 대치한 현실에다 특히 북핵 사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통상적인 한.미 동맹관계에서 본다면 양국은 지금 긴밀한 정보공유 및 협조체제를 완전 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한.미 양국의 정보 공조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을 실증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관리하에 있는 탈북자를 상원 증언대에 세우면서 우리 정부에 협조요청이나 통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분명 국가 간의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다. 문제는 미국이 우리 정부를 무시하는 듯한 그런 행동을 왜 했을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알고 싶고 우려하는 바다. 미국이 정보교류와 협력에서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석이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한달 차이로 미국을 방문한 한.일 양국 정상에게 부시 미국 대통령이 취한 대접의 차이에서도 감지된다.

일본 총리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부시에게 최고급 정보를 보고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기회를 얻었지만 우리 대통령은 그렇지 못했다. 정부는 왜 이런 틈이 한.미 간에 벌어지고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방미에서 미국의 대한(對韓) 불신감을 씻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양국 간 정보교류의 원활화를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가 우리에게 아직 있다면 정부는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미국의 정보협조가 부실하다면 그것은 우리 안보에 치명적 위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